-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더라 2(9)
예전에 내 이십 대의 대학 생활에 대한 글을 페북에 공유했었다. 내 페친이라는 것이 대부분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라서 페친이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글에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좋을, 다사다난하고 좌충우돌했던 젊은 날의 부끄러운 내 모습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 첫사랑의 이야기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북에 글을 공유한 이유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기 위해서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발가벗기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반응을 접해야 했다. 성가대 지휘자인 K가 눈앞에서 마주 지나치면서까지 나를 자꾸 외면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코로나 때문에 성가대 찬양을 여덟 명으로 축소할 때나 송구영신 예배 찬양에서 나를 제외해 버리는 것이었다. 아주 내 면상을 마주 보지 않을 심산이었다. 계속 안 볼 사이도 아니고 이 불편한 상황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K가 성가대 솔리스트로 있을 때, 내가 성가대원으로 봉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십여 년을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성가대 연습실에서는 소프라노와 베이스로서 가장 앞자리에서 마주 앉아 눈길을 피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일이었다. K는 특히나 눈길이 머무는 사람이었는데 워낙 표정이 맑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이성으로서의 호감 같은 감정이었을 텐데 그런 감정은 남녀 사이에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해묵은 내 첫사랑의 이야기에 그런 반응을 보이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십여 년을 성가대에서 함께 한 인연으로 볼 때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길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날을 잡아 둘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말했다. “오랫동안 봐왔지만 표정이 좋았다.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은 이성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라고.
이 말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고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내 입장에서 어려운 말일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운도 못 떼다가 그녀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갈 때까지도 주저하고 있으니까 K는 나를 중간에 내려줄 생각을 않고, 말을 하지 않으면 끝까지 따라가겠단다. 기어코 내 말을 듣고 말겠다는 태도에 상황을 회피할 도리가 없었다.
K로서는 급작스러운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다지 당황해하거나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어떻게 한다… 뭐, 지금처럼 지내면 되죠”라면서 “말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하죠?“란다.
“……” 유구무언일밖에.
물론 다시 성가대원으로 찬양을 할 수 있었다.
이모저모를 따져도 편하게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되지만 내가 K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L은 집사로서 나와는 성가대와 교회 문화원에서 함께 봉사를 하는 사이였다. 한 가정의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일상 이외에 일본의 한 대학에서 산업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 거의 매주 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고 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통역 일까지 하고 있었으니 자기 인생을 엄청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교회에도 열심이었지만 모나지 않은 성격과 행동으로 L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참 바른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L이었다. 한마디로 인간적인 매력이 가득한 사람으로 누구에게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성의 입장으로 볼 때 여성으로서의 매력도 충분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해 호감을 느끼지 않을 남성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도 L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 선한 영향력으로 교회에서 앞으로 장로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사에 열심이던 L이 언젠가부터 교회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듣기로는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단다. 그 후에는 교회를 떠나기로 했다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같이 봉사하는 기관의 부서장인 나에게는 아무 언급도 없이 L이 교회를 떠난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게 되어 당혹스러웠지만, 카톡으로라도 박사학위 논문의 완성을 앞두고 있는 L에게 응원의 말과 함께 변함없는 모습을 기원했다. 이에 L은 “섭섭하고 아쉽지만 연락을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답을 했다. 그 말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내가 L에게 섭섭하게 한 행동이 있었는지 한동안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딸이 교회학교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을 일이라도 있었나 생각해 보았지만, 부모는 교회를 떠났어도 딸은 코로나 이전까지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어 그마저도 이유가 될 수 없었다.
L은 담임목사와 교회의 몇몇 사람에게는 자신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밝혔던 모양이었다. 이후의 분위기로 나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고, 가족여행을 떠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더더욱 마음이 복잡한 가운데 사람의 인연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스쳐 가는 인연 중에서도 붙들고 싶은 인연이 있다.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남에게 전해주는 L도 붙들고 싶은 인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녀 사이를 떠나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오래 함께 했으면 하는 인연이었다. 그러나 그 인연이 거기서 멈추어야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L이 당연하고도 올바른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사람의 인연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L이 붙들고 싶었으나 스쳐간 인연이었다면 K는 이렇게 스쳐 보낼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 인연을 깊은 것으로 가져갈 형편도 아니다. 나는 K가 언제나 행복했으면 한다. 그러나 나는 K를 행복하게 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결혼이 여자가 행복해질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 쉰이 넘도록 솔로로 남아있는 K의 모습을 안쓰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솔로인 까닭에 지금은 부모님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자기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곁을 지키던 사람도 일도 모두 떠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금년에 구순이 넘은 아버지가 아파 응급실을 오고 가면서 K는 몸과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리고 하는 일도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지난번 저녁식사를 하면서 K가 했던 말이다. K는 공연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본래 음대 동기생 세 명이 힘을 합해 시작한 일이지만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책임감을 많이 느낄 것이다. 그날도 일 관계로 새벽에 창원으로 갔다가 조금 전에 올라온 길이었다. 그럼 식사 약속을 미룰 일이지 미련하다 싶었다. K는 기획사 이외에도 보컬 트레이너와 학교 출강, 그리고 뮤지컬 음악감독까지 하는 일이 많았다. 점점 기획사 쪽 일이 늘어나다 보니 그쪽에 치중하게 되면서 몸은 더욱 피곤해지는 모양새였다. 이런 K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응원하고 걱정하는 것이 전부일뿐이다.
이제 K라는 사람이 나에게는 하나의 의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두 사람의 사이가 썸 타는 것과 비슷하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는 지켜야 할 선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발전시켜서는 안 될 이유가.
단순하게 내가 유부남 이래서가 아니다. 나는 아내에게 빚진 것이 많은 사람이다. 아내는 순수한 사람이다. 함께 살아오면서 물질에 마음을 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돌아가신 장모님이 그랬다. 그리고 하나뿐인 딸을 키우면서도 딸을 다른 아이와 비교하거나 부모의 시각으로 딸에게 무엇 하나도 강요한 적이 없다.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세상적 가치에 이끌리는 속된 구석이 없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또한 나와 함께 살면서 곤란을 많이 겪었다. 그 와중에서도 단 한 번도 내 탓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내의 건강이 썩 좋지 않다. 만성 염증으로 자주 고통을 느낀다. 통증이 심할 때는 옷을 입고 벗는 것조차 힘들어해서 내가 도와줘야 한다. 어머니께서 뇌경색으로 투병 중 일 때 “당신, 어머니께 하는 거 보니까 이 사람, 내가 많이 아파도 날 버릴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했던 사람이 아내다. 나는 이런 아내의 아름다움과 헌신을 배신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름 도덕적인 사람이라 믿는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도덕성이 사회의 통념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보편적인 이해를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 것이다. 나와 K의 관계를 아내에게 밝힐 수도 없는 것이라 떳떳하지는 못하지만, 서로가 불편한 상황을 만들 의도도 없다. K와는 간혹 식사를 함께 하면서 적절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K가 현명한 사람이라 내가 그 경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사실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러한 내 처신이 아내에 대한 예의요, 또한 K에 대한 예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삶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만일 섣부르게 그 경계를 허물어야 할 지경이 된다면 나로서는 붙들고 있던 인연의 끈을 놓아야 할 것이다. 다만 스쳐 보내지 못한 인연도 간단한 것이 아니기에(너무 불교적 사고인가) 그럴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