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 우아하면서도 슬픈

- 음악으로 쓰는 에세이(4)

by 밤과 꿈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는 매년 새해가 되면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인 빈 필이 신년음악회를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이 신년음악회를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미리 표를 예매한 애호가들이 빈 무지크페라인 잘(빈 악우협회의 전당)의 황금홀을 가득 채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여러 방법으로 이 음악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빈 필의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왈츠와 폴카가 중심을 이룬다. 3박자의 왈츠와 2박자의 폴카는 모두 경쾌한 춤곡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에 대한 의도가 엿보인다. 즐겁게 새해를 맞이하고 그 마음이 일 년 내내 지속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리라. 마찬가지로 빈 국립가극장에서는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간에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를 무대에 올리는 전통이 있다. 웃음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떠나보내고 웃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의미가 있을 게다.

빈 신년음악회를 더 이상 언급할 생각은 없다. 한 번 더, 러시아 음악이다. 그중에서도 구 소련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이다. 앞서 빈 신년음악회를 언급한 이유라면 왈츠라는 지점에서 쇼스타코비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왈츠는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도시의 전유물도 아니고,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의 ‘꽃의 왈츠’나 쇼팽과 브람스의 피아노 독주곡에도 품격 있는 왈츠가 있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왈츠의 원형이라고 할 랜틀러라는 춤의 리듬에 슈베르트와 같은 초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곡을 썼으니 그 연원이 오래되었다고 할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재즈 앨범’이라는 제목으로 2개의 모음곡집을 작곡했다. 그중 제2 모음곡에 유명한 왈츠 2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장 미국적인 음악이라는 재즈의 어법을 도입해서 작곡을 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체제 홍보 등의 이유로 각광을 받으면서 보다 대중적인 음악이 영화를 위해 필요해진 까닭일 것이다. 이럴 때 일찍이 라벨이 그랬던 것처럼 재즈라는 장르가 작곡가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리라.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앨범’이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작곡될 수 있었던 이유. 곧 재즈는 소련에서 금지 음악이 되었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만큼 우아한 왈츠가 또 있을까 싶다. 우아함이 지나쳐 슬프기까지 하다,라고 말하면 근거가 희박한 주관적 시각일 것이다. 그것보다는 러시아의 문화에 내재된 우울한 정서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겠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앨범’ 제2 모음곡 중에서 ‘왈츠 2번’


1980년대 후반에 르네상스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를 했던 후배가 있었다. 후배가 말하기를, 자신이 디제이를 할 때 언제나 오후 한 시쯤이면 르네상스에 들러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을 신청하고선 조용히 그 곡 만을 듣고 가는 노신사가 있었단다. 비창 교향곡이 노신사에게 어떤 사연과 연결되어 있는 매개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흔하게 보는 일은 아니다. 물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가진 과도한 센티멘털리즘을 좋아하지 않는 애호가도 적지 않고,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대한 기호가 국경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인 확장성을 가지고 있지만,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가진 우울한 정서가 우리에게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사랑을 받고 있는 사실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두 민족에게서 형성된 역사와 종교적 심성의 유사성에 바탕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시아와 동유럽에 걸친 대륙을 터전으로 한 러시아와 주로 반도에서 살아온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동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랜 분열과 몽골의 지배라는 부침을 겪었던 러시아의 역사가 또한 지리적 환경으로 부침이 많았던 우리의 역사와 전혀 다르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공감할 부분은 있다는 뜻이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발원지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라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우리와 러시아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동일한 정서 DNA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간난이 많았던 역사는 러시아나 우리 모두가 종교적 심성을 키우도록 했을 것이다. 중세시대로부터 절대 권력자인 차르의 독재에 신음하던 러시아 민중에게 있어 기독교(러시아 정교회)는 현실의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영혼의 보금자리와 같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양반의 횡포에 억눌린 조선의 민중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꿈꾸며 미륵신앙을 붙들고 살아가지 않았던가.

우리에게 내재된 ‘한’의 정서는 노래가 되어 시간을 타고 흘렀듯이 러시아 민중의 정서도 노래가 되어 후대로 전해져 민요가 되었다. 러시아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회화에서도 잘 포착된 러시아 민중의 고단한 삶이 러시아 민요에는 녹아있다. 그리고 이런 정서를 가장 잘 살려 노래한 것으로 돈 코사크 남성합창단의 노래가 있다. 코사크들은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 차르의 허가로 농노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 돈강 유역에 모여 살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용맹하여 차르의 친위부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코사크들은 미하일 숄로호프의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에 잘 기술된 것처럼 볼셰비키 혁명 이후 전개된 내전에서 백군의 편에 서게 되었다. 치열한 전장에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을 위문할 목적으로 백군 장교인 세르게이 야로프 중위의 주도로 목청이 좋은 사십 명의 코사크들로 합창단을 조직한 것이 바로 돈 코사크 합창단인 것이다. 그리고 내전에서 백군이 적군에게 패배한 직후 합창단원 전부가 러시아를 떠나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 1922년 공식적으로 첫 연주회를 가진 이후로 전 세계를 순회하며 러시아 민요를 알렸다. 이런 사연 때문에 이 합창단이 부르는 러시아 민요에는 다른 합창단이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애환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음반으로 접할 수 있는 이들의 노래는 1950년대의 것으로 젊은 음성은 아니지만, 그들의 노래가 가진 호소력만큼은 어떤 프로 합창단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태생부터 단원의 교체가 불가능, 자연스럽게 해체의 길을 걸었지만 그 후손들에 의해 같은 이름으로 합창단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동일한 합창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돈 코사크 합창단이 부르는 러시아 민요 ‘작은 종은 단조롭게 울리고’


러시아 민요의 전통은 지금도 로망스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러시아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새롭게 창작된 러시아 로망스는 우리의 대중가요와 같은 음악으로 노래가 가진 분위기는 전통적인 러시아 민요와 마찬가지로 우수에 찬 것이 많다. 전문적인 로망스 가수뿐만 아니라 클래식 가수들도 즐겨 로망스를 자신의 레퍼토리로 삼을 만큼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노래가 적지 않다.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프톱스키가 부르는 러시아 로망스 ‘나 홀로 길을 걷네’


러시아의 음악 전통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맞닿아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 또한 러시아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연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는 창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회주의 체제가 빚는 갈등에 대한 고뇌가 어려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재즈 앨범’의 왈츠에서 느낄 수 있는 슬픔의 그림자는 작곡자의 고뇌가 아닌, 러시아 사람들에게 내재화된 우울한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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