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음악에 시대정신을 담다

- 서양 음악사를 이끈 10가지 장면(9)

by 밤과 꿈


낭만주의의 감정 미학과 낭만주의 음악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미학은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고 예술 창작의 원리를 미학적 개념으로 설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정적 측면이 미적 체험의 중심이라는 '감정 미학'이 낭만주의 미학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낭만주의 예술은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창작 원리로 삼고, 예술의 소비자 또한 생산자에 의해 촉발된 감정을 자신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수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 낭만주의 음악은 감정 미학에 따라 다른 예술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우선 낭만주의 초기에 바켄로더는 음악을 일컬어 "이성을 넘어서는 심오한 세계"의 표현이 가능한 장르로 평가했으며, 이어 이는 낭만주의 후기의 쇼펜하우어에 의해 음악을 "감정의 예술로서 음악 만이 이성을 초월한 최고의 예술적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 음악은 일관되게 19세기 감정 미학을 탄생시킨 낭만주의 사고관에 따라 최고의 예술로 평가받게 되는 것입니다.

낭만주의의 혁명성과 바그너의 음악


낭만주의의 감정 미학과 함께 낭만주의 일반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낭만주의의 혁명적 성격은 낭만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낭만주의 예술의 '미적 근대성'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낭만주의 예술의 미적 근대성은 낭만주의 예술이 낭만주의 예술의 형식 원리 안에서 예술의 독자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예술의 미적 근대성 문제를 예술의 인식과 존재에 대한 이념의 문제로 확장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이들 논점은 예술가의 자율적인 창조성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문학 이론가인 모리스 블랑쇼가 말하는 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로 이러한 미적 근대성의 확보와 예술의 자율성에 의한 예술가의 창조력이 낭만주의가 지닌 혁명적 성격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바그너 음악의 본질을 혁명과 사랑으로 압축하여 설명합니다. 이는 대개 그의 삶과 음악의 연관성과 관련된 설명이기도 합니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19세기는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표면화된 시민 의식과 시민운동은 시대적 요청이었고, 마르크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바그너는 시인 하이네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직시하고 변화의 물결에 동참했습니다. 실제로 바그너는 드레스덴의 오페라극장에서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있었던 1849년 5월에 드레스덴에서 군주제 폐지를 목적으로 일어났던 혁명의 주동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실패로 끝난 혁명 이후로 바그너는 독일 황제에 의해 지명 수배가 되는 처지로 프랑스로 망명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개인적 체험이 있기도 했지만 '음악극(music drama)'라는 장르로 결실을 맺게 된, 총체 예술이라는 새로운 음악 예술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바그너에게는 낭만주의의 미학이 지닌 혁명적 성격과 이를 가능케 한 근대 시민 의식이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에 녹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4부작 음악극인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신족과 난쟁이족, 거인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권력과 재물에 대한 탐욕과 비열한 권모술수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허영심에 의해 몰락하는 신들의 존재는 자본주의의 몰락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입니다.

혁명과 더불어 바그너 음악의 중심축을 이루는 사랑의 경우에도 고결한 사랑과 정염의 사랑 사이를 방황하다 순결한 처녀 엘리자베스의 희생으로 구원받는 오페라 '탄호이저'나, 음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죽음으로서 완성하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 등이 바그너가 생각하는 사랑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음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 자신과 자신을 후원하는 베젠동크 부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등과 고뇌의 영향으로 작곡된 음악입니다.


바그너 음악의 특징과 음악사적 위치


바그너가 생각하는 총체 예술은 음악의 작곡뿐만 아니라 대본과 연출, 무대 미술까지 본인이 감당하는 것으로서 이럴 때에 하나의 창작 예술에 통일성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믿음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바그너는 음악가로서 뿐만 아니라 대본이 가지는 높은 문학성 때문에 문학가로서의 평가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바그너의 다양한 재능은 성장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계부가 된 루트비히 가이어는 어린 바그너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배우이자 극작가였으며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바그너가 그를 친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사이도 돈독했던 것 같습니다. 이 의붓아버지로 인해 경험하게 된 무대는 어린 바그너에게 있어서 하나의 꿈으로 연극을 자신의 길로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계부인 가이어마저 일찍 죽어 바그너는 친부의 동생인 아돌프 바그너의 후견을 받게 됩니다. 아돌프 삼촌은 학자로서 바그너의 문학적 재능에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성장 과정에서 습득한 자질과 재능 이외에 바그너는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음악적 장치를 고안하고 자신의 음악에 적용,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첫째, 반음계를 적극적으로 사용, 음악의 표현력을 확대했습니다.

둘째로는 '무한선율'의 개념을 도입하여 연극과 음악의 일체감을 강화하게 됩니다.

이것은 음악에 의해 진행되는 오페라에서 음악의 중단은 연극의 흐름 또한 끊기게 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불편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오페라의 주역 가수가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르기 위해서는 일단 이전의 선율이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이를 두고 시작된 아리아가 끝나면 관객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가수를 격려하게 되고, 그때 무대는 정지된 TV 화면처럼 박수가 그칠 때까지 멈추게 됩니다. 바그너는 이러한 오페라의 비연극적인 부분을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셋째, 유도동기(라이트 모티브, leitmotif)의 활용을 들 수 있습니다.

바그너는 음악을 작곡하면서 주인공의 감정 상태에 따라 사랑의 동기, 질투의 동기, 슬픔의 동기, 분노의 동기 등 정형화된 음형을 설정하고 반복 적용함으로써 음악에 연극적 성격을 부여하고, 음악에 통일성을 가져오고자 했습니다.

넷째로 전주곡 개념의 도입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주회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를 보게 될 때 그날 연주할 곡목의 구성은 짧은 길이의 서곡이나 단악장 형식의 관현악곡을 연주한 뒤 게스트 솔리스트와 함께 협주곡을 연주하고 잠시 인터미션을 가지고 2부에서는 교향곡을 연주하게 됩니다. 이때 1부에서 연주되는 첫곡은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연주회장의 음향을 점검하고 본격적인 연주에 앞선 워밍업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청중으로 하여금 연주가 시작되었으니 집중하라는 시그널의 의미가 큰 것입니다.

오페라에 있어서도 서곡이나 간주곡은 관객의 주의를 모으는 기능으로 탄생한 것으로 오페라의 내용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그너는 오페라의 서곡과 간주곡을 대신에 음악극에서는 전주곡의 개념을 도입, 앞에서 언급한 유도동기를 활용, 음악극의 줄거리를 압축함으로써 전체적인 통일성의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음악적 장치에 의한 음악극에 이르러 음악과 연극, 그리고 문학이 잘 어우러진, 보다 완성된 형태의 극음악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그너 본인은 "베토벤에게서 교향곡은 완성되었다"며 오직 극음악에만 몰두했지만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브루크너와 말러는 교향곡에서 반음계와 확장된 오케스트레이션의 효과를 통해 바그너의 음악적 이상을 계승했고, 볼프는 리트(독일 가곡)의 분야에서 음악과 시의 보다 완벽한 결합을 이루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그너와 그의 추종자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일컬어 '후기 낭만주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단 음악가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과 음악이 담고 있는 사상은 쇼펜하우어와 니체 등 사상가에 의해 시대정신의 완벽한 구현으로 칭송되면서 그 시대의 지성인치고 바그너에게 경도되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할 만큼 그의 음악이 가진 영향력이 엄청나 바그넬리언이라고 칭하는 숭배자들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후기 낭만주의는 완숙기의 낭만주의가 보여준 세기말적 현상으로 이를 정점으로 낭만주의는 시간의 저편으로 저물면서 바그너를 추종하며 한편으로는 그를 극복하고자 한 음악가들이 나타나 현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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