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길을 묻다

by 밤과 꿈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서는 1960년에서 1979년까지의 우리 소설 문학에 대하여 '현실의 질곡과 문학적 역설, 그 소설의 시대'로 부언하여 정리하고 있다. 선별된 단편 소설을 일견해 보아도 그 시기야말로 한국 소설문학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내가 우리 단편 소설의 정수라고 굳게 믿는 김승옥의 '무진기행',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그리고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모두 이 시기에 나온 소설들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무진기행'이나 '삼포 가는 길'이 모두 길을 가는 여정을 통해 삶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소설 속 화자인 '나'를 통해 순수함과 속됨의 양가적 태도를 가진 개인의 고뇌를 형상화한 '무진기행'이나, 공사판을 전전하는 영달과 금방 교도소에서 출소한 정 씨, 그리고 도망친 술집 작부 백화 등 밑바닥 인생들의 삶과 그들이 사랑을 통해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삼포 가는 길' 모두가 삶의 존재론적인 의미를 잘 나타내고 있는 소설들이다.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벌판을 향해서 달려갔다."는 '삼포 가는 길'의 마지막 문장과 같이 부초와도 같은 세 명의 밑바닥 인생의 미래가 불확실하고 아득한 것일지라도, 또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라는 '무진기행'의 마지막 문장이 보여주듯 삶의 양가성이 던지는 존재론적인 문제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일지라도 인생이라는 멈출 수 없는 여정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이지 라이더'나 '파리, 텍사스',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로드 무비(road movie) 또한 여정을 통해 삶의 존재론적 문제를 던지는 영화들이다.

서부에서 동부를 오토바이로 여행하면서 미국의 가치를 찾아내고자 했던 '이지 라이더'. 그리고 자신의 잘못으로 파괴된 가정의 회복을 위해 자신의 근원을 찾아 방황하는 '파리, 텍사스'와 두 명의 여성이 벌이는 일탈의 여정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델마와 루이스', 이들 영화 모두가 삶의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주제로 한 영화였다.

그러나 '이지 라이더'와 '델마와 루이스'의 여정은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고, '파리, 텍사스'에서의 트레비스의 여정도 다시 온전히 가정을 회복하지는 못한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길 위를 걸어가는 존재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때로는 내리막도 있고, 때로는 오르막도 있을 것이다.

또한 때로는 부드럽게 발을 감싸는 풀밭 길을 걸어갈 수도 있고, 때로는 발을 아프게 하는 돌밭길을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인생이라는 길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예의 소설이나 영화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길이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니기에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아수라장이라고 했을까.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우리를 원죄를 짊어지고 낙원에서 추방된 존재라고 했을까. 게다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비록 우리가 걸어가는 여정의 끝이 죽음일지라도 그 끝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이 여정을 멈출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이 오랠수록 무거워지는 발걸음일지라도 여정을 멈추어서도 안될 것이다. 끝날에 이르기 전까지 여정을 멈추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삶의 의미이며 가치일 것이기 때문이다.

즐겨 듣는 기독교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 제목이 '길에게 길을 묻다'이다. 참 좋은 말이다. 이 말과 같이 인생이란 길을 가면서 인생에 대한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묻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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