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 서양 음악사를 이끈 10가지 장면(10)

by 밤과 꿈


후기 낭만주의 이후, 양식의 다양화


19세기 말의 후기 낭만주의 음악은 바그너의 음악을 계승하고자 하는 일군의 작곡가들과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영향력을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시도한 작곡가들이 혼재된 상태로 20세기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19세기 후반의 공업화에 의한 자본주의의 발달은 우리에게 후기 산업사회에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물론 바그너의 음악에도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표명되고 있었지만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사상을 이념화했듯이 바그너의 음악 또한 시대적 현상으로 유럽의 지성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그너 이후의 후기 산업사회는 정신적 무방향성이라는 세기말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음악에 있어서 20세기의 다양한 양식(style)이 탄생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20세기라는 새로운 시대의 음악적 다양성은 세기의 전반기에 드뷔시에 의한 인상주의, 쇤베르크, 베르크, 힌데미트의 표현주의, 그리고 큰 유파를 남기지 못한 미래주의,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라는 양식을 탄생시켰고,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경험한 이후에는 신빈 악파의 쇤베르크와 두 제자 베베른, 베르크에 의해 시작되어 메시앙, 슈토크하우젠, 불레즈에게 계승된 음렬 음악, 슈토크하우젠의 구체 음악, 케이지의 우연성의 음악을 거쳐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라스의 최소 음악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20세기는 다양한 음악이 혼재된 시대였는데 이는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인 만연한 개인주의의 결과로 수 있겠습니다.


드뷔시와 쇤베르크, 바그너를 넘어서다


후기 낭만주의 음악 이후의 다양한 양식의 음악 중에서도 그들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현대음악의 문을 연 두 명의 선구적인 작곡가가 있습니다. 바로 드뷔시와 쇤베르크로서 그들이 어떻게 새로운 음악을 창안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음악을 처음 개척한 작곡가는 바로 클로드 드뷔시였습니다. 드뷔시는 바그너에 대하여 "새벽으로 오해받았던 아름다운 황혼"으로 인식하고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의 새벽을 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에서 바그너의 음악적 기법을 적용했던 브루크너나 말러와는 달리, 그리고 동시대 프랑스에서 바그너 류의 오페라를 작곡했으나 실패한 댕디와 쇼송과는 달리 드뷔시는 정공법적으로 오페라를 선택하면서도 바그너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그때까지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오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와 '목신의 오후'가 그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지금도 많이 무대에 올려지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는 솔로의 아리아나 중창과 같은 노래는 전혀 없이 각 막의 내용을 연결하는 간주곡이 오페라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면서 청중으로 하여금 오페라의 내용을 따라가도록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그너 이전의 오페라가 성악 중심으로 관현악의 역할이 노래의 반주라는 개념이 컸고, 바그너의 음악극에 이르러 음악과 연극이 동일하게 융화되었다면, 드뷔시에게 있어서는 오페라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기악이 담당하는 것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드뷔시는 "나는 오페라에서 노래가 지나치게 오만하게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시(내용, 극)는 지나치게 무거운 음악의 옷을 입고 질식하는, 그런 잘못을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래란 그럴 가치가 있을 때에서만 불러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페라 대본은 나에게 줄거리를 설명하는 지겨운 일을 강요하지 않고, 그 대신에 늘 변화하는 장면들의 분위기와, 극 중 인물들의 다툼이 아니라 인생에 순응하는 내용의 것이어야 한다."라고도 말합니다.

따라서 '펠레아스와 멜레장드'는 기존의 오페라와는 달리 등장인물들의 삶이나 주제가 아닌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감정에 따라 변하는 것을 표현한 대사만 존재하며 이를 관현악의 간주곡으로 연결, 통일성을 주게 되는 구조인 것입니다.

결국 드뷔시가 오페라에서 창조하고자 한 것은 '음악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시인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에 곡을 쓴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 대하여 드뷔시는 "그 음악은 그 시의 총체적인 인상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드뷔시의 음악이 인상파 회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드뷔시와 인상파 화가들과의 교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오페라뿐만 아니라 드뷔시의 모든 음악에서 감지되는 모호함이 인상파 회화가 말하는 인상과 많이 닮아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영향은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드뷔시는 우리가 인상주의라고 일컫는 음악 작법으로 바그너를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현대음악의 길을 연 또 한 사람의 선구적인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서양 음악사에 있어서 쇤베르크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의 음악은 잘 연주되지 않지만 그는 위대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고 음악사적 가치도 높게 평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가 창안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혁신적이었던 것이었기에 우리는 쇤베르크로부터 (어렵기만 한) 현대음악이 시작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음악의 출발은 드뷔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만.

쇤베르크의 음악의 요체는 12음 기법으로 알려진 음렬 음악입니다. 이는 음악을 구성하는 주된 조성 없이 반음계를 포함한 12 음렬을 동등하게 배열하는 것으로 조성이 없다는 사실에서 쇤베르크의 음악을 무조 음악이라고도 합니다.

바로크 시대 이후로 계속 적용되어 왔건 장, 단조의 조성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서양 음악사의 일대 혁신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이러한 음렬 주의 음악이 쇤베르크 혼자의 힘으로 탄생했다기보다는 알반 베르크와 안톤 베베른이라는 두 제자와의 협업으로 탄생된 것이지만 음악적 아이디어가 본래 쇤베르크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0세기의 다양한 음악적 경향 중에서도 새로운 세기의 벽두를 장식한 드뷔시와 쇤베르크의 혁신적인 음악 덕분에 음악은 19세기 말의 저물어가는 유산을 일찍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음악의 위기와 미래의 음악


흔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음악은 위기를 맞이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음악이란 (시대사조가 아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 음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중음악은 위기는커녕 20세기 중반 이후로 지금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오늘날 음악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언제부터인가 음악은 진지한 음악과 대중적인 음악으로 분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베토벤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제7강에서 진지한 음악을 위해 음악 애호가들에 의해 베토벤이 빈으로 초청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베토벤은 그들을 위해 진지한 음악 이외에 보다 대중적인 음악도 작곡했으리라 믿어집니다. 작품 번호가 없는 영국 민요집이나 바가텔 같은 류의 음악이 되겠습니다. 아마도 빈 음악계에서의 영향력을 위해서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후 낭만주의 시대에서는 프리 랜서로 살아가게 된 음악가의 현실에서 음악의 분화는 심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에서부터 음악에는 음악가의 주관이나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개념이 대두, 음악이 스스로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게 됩니다.

지금은 고립이 극도로 심화되어 사람들은 이 시대의 음악을 거의 듣지 않습니다. 음악 감상의 주된 대상은 낭만주의나 고전주의 음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음악은 우리의 자화상이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내면과 시대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동시대의 음악이 외면받고 있는 것에는 현대인이 수용하는 음악적 취향이 낭만주의라는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살면서도 감정 미학이나 천재 미학과 같은 19세기 낭만주의 미학의 안목과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의 음악을 어려워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지났지만 음악에는 지난 세기의 초엽에 이루어졌던 대변혁과 같은 새로운 경향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또한 음악의 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래가 열리지 않은 것이니까요. 대중음악이 음악 소비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고전 음악의 미래가 밝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고전 음악이 소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음악에 대한 열렬한 믿음을 지닌 소수의 음악 애호가들에 의해 고전 음악은 현 수준의 자기 가치를 유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러나 더 먼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음악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의 생산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