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瑞雪)을 기다리는 마음

by 밤과 꿈

새벽에 제법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아마도 제대로 내리는 첫눈일 것이다.

이왕이면 찔끔 내리다 마는 싸락눈이 아니라 탐스러운 함박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물기를 잔뜩 머금어 이내 질척거리는 눈이 아니라 결정 사이에 공기층이 두터워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기분 좋은 그런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어린 나이도 아닌데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이 설렌다. 괜스레 베란다 창을 열기도 하고, 진공관 앰프의 불을 지피고 오래된 lp판을 꺼내 든다.

이럴 때 내 마음이 가을바람의 새털처럼 진득하지 못하고 부산하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 위해 오늘 밤에 어울리는 시를 찾아 읽는다.



무거운 문을 여니까
겨울이 와 있었다.
사방에서는 반가운 눈이 내리고
눈송이 사이의 바람들은
빈 나무를 목숨처럼 감싸안았다.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

눈 덮힌 흰 나무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복잡하고 질긴 길은 지워지고
모든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고
가볍게 떠올랐던 하늘이
천천히 내려와 땅이 되었다.

방문객은 그러나, 언제나 떠난다.
그대가 전하는 평화를
빈 두 손으로 내가 받는다.



마종기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다. 눈이 내려 쌓인 세상의 평온한 풍경을 따뜻하게 전하는 시이다. 시에서와 같이 사람들에게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능케 한다면 그 눈은 사람들에게 상서로운 기운을 전하는 서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장에서의 승전보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하는 전서구(傳書鷗)처럼 요즘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사 어디에도 낙관적인 전망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우선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세상을 온통 삼켜 버렸다. 시간이 약이라는 심사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한풀 꺾이기를 인내하면서 기다려 보지만 3차 대유행의 시기를 맞이하여 오히려 바이러스의 기세가 등등하여 지금이 위기라는 방역 당국의 말이 낯설지 않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이 각박하고 무기력하여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엉망진창으로 출구가 없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마땅한 대책이 없는 부동산 문제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빼앗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정치 현실이 우리를 짜증스럽게 한다. 마치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열차를 탄 것처럼 위험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다. 자칫하면 궤도를 이탈할 것 같은 정치 현실을 바라보는, 이유 없이 영향을 받을 국민들이기에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답답한 현실이기에 농담으로라도 오늘 내리는 눈이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어둠을 거두어 가는 묘약이었으면 좋겠다. 농담처럼 우리에게로 오는 첫눈이 우리에게는 미소가 되고 기쁨으로 찾아오는 행복의 전령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지새우는 이 밤에 서설을 기다리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