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발견하는 꿈의 참된 가치

by 밤과 꿈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 아직은 인적이 드문 뉴욕의 맨해튼 5가를 택시가 지나간다. 유명한 보석 가게 티파니 앞에서 택시가 멈추어 서고, 택시에서는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짙은 선글라스를 낀 홀리 고라이틀리(오드리 헵번 扮)가 내린다. 밤새 파티를 즐겼을 홀리는 손에 커피와 크로와상을 든 채 티파니의 쇼 윈도를 천천히 살펴보며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헨리 맨시니의 음악 '문 리버(moon river)'가 흐르는 가운데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오프닝 신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약간은 들뜬 분위기가 매력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마법에 걸린 듯 영화에서 시선을 옮기지 못하게 만든다.

이 유명한 오프닝 신에서 등장하는 보석 가게 티파니가 상징하는 것은 상대역으로 영화의 결말에서 연인이 될 폴(조지 페퍼드 扮)을 처음 만났을 때 홀리가 폴에게 하는 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울한 것은 비참해요... 난 우울할 때면 티파니를 찾아가요. 티파니의 조용함과 고고함이 내 기분을 좋게 해요."

홀리에게 보석 가게 티파니는 성공의 품격 있는 상징이다. 파티와 드레스로 자신을 치장해 보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뉴욕이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깨달을 때마다 꿈꾸듯 티파니를 찾아오는 것이다.


홀리는 꿈을 좇아 시골에서 뉴욕이라는 대도시로 상경한 허영심 많은 여자이다. 트루먼 커포티의 원작 소설에서는 홀리의 신분을 매춘부로 설정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허영심을 충족시킬 남자를 찾아다니면서 자신을 유혹하는 남자들의 선물을 팔아 생활하는 여자 정도로 톤 다운해 묘사하고 있다.

한편 폴 또한 삼류 작가로 부유층 연상 유부녀의 내연남으로 정부에게서 생활비를 받아 살아가는 처지로 홀리나 폴, 두 사람 모두 내세울 것 없는 그렇고 그런 처지의 인생들인 것이다.

이 두 사람이 같은 건물의 아래, 위층에 세 들어 살게 되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가까워질수록 폴은 홀리에게 연민과 더불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대도시에서의 성공이라는 허영을 포기하지 못하는 홀리의 마음을 파고들 때면 홀리는 "난 다른 사람이 나를 엿보는 게 싫어요."라며 허영심에 가리어진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완강히 감추는 태도를 보인다.

합법적이지는 않지만 14살에 아버지 뻘의 남자와 결혼을 했던 홀리에게 옛 남편이 찾아와 함께 고향으로 갈 것을 종용하지만 홀리는 "전 더 이상 롤라매이 반즈(홀리의 옛 이름)가 아니에요."라면서 옛 남편의 제안을 거절한다. 홀리는 남동생과 함께 계란 등을 훔치며 살았던 힘들었던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홀리가 지닌 허영심의 근원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신분 상승의 마지막 기회였던 브라질 부호 호세와의 결혼도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불발에 그치지만 끝까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홀리에게 폴은 "당신은 비겁해. 자신을 꼭 바로 바라볼 용기라고는 전혀 없어. 당신이 어디로 도망가더라도 결국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거야."라고 거칠게 쏘아붙이면서 이별을 고한다.

쏟아지는 비속에서 홀리가 지금의 시간과 단절하듯 버린 고양이를 찾아 나선 폴 앞에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본 홀리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한다.

나는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의 문제작도 아니고 뻔한 내용의 멜로드라마로서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의 평범한 영화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묘하게 시선을 끄는 매력으로 가득한 영화다. 보는 내내 마음이 푸근해지는 영화인 것이다.

영화의 분위기 외에도 이 영화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에는 홀리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오드리 헵번이라는 배우가 적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펼치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마릴린 먼로에게 홀리 역을 맡길 계획이었다는데 그랬다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홀리라는 배역이 자신의 허영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는 성격이라는 것이 이 영화를 친밀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허영심을 가지고 있다. 다만 자신의 허영심을 애써 감추고 있을 뿐.

그러한 우리에게 자신의 허영심을 숨기지 않는 홀리의 존재는 편안하고 정이 가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홀리가 우리와 같이 자신의 허영을 감춘 위선적인 존재라면 그 홀리를 바라보는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헨리 맨시니의 음악도 이 영화를 사랑스러운 영화로 만드는데 일조를 담당한 것이었다. 영화의 분위기와 이처럼 맞아떨어지게 어울리는 음악도 찾기 힘들 것이다.

비를 맞으며 키스하는 엔딩 신에서 흘러나오는 "두 방랑자, 세상을 보러 갔다네. 우리는 무지개의 끝을 찾아 기다리네."라는 주제곡 '문 리버'의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헨리 맨시니의 OST는 1961년도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음악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꿈은 멀리에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그리고 꿈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소박함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줌으로써 우리의 허영에 대한 불안을 가라앉히고 우리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에 이 영화의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