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갈수록
벽에 걸린 시계 소리는 크게 들린다.
그것은
뚜벅뚜벅 어둠 속을 걸어오는
발소리 같기도 하고
뚝뚝 지층을 향해 떨어지는
물소리 같기도 하다.
그것은
어둠을 한줌씩 물리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둠을 한줌씩 더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눈을 뜨면
아무것도 걸어오지 않고
아무 것도 떨어지지 않는다.
시계의 바늘은 그저 일정한 간격으로
벽 위에서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마 저것은 시계 속의 건전지가 닳아버릴 때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끝없이 돌아가리라.
의미도 없이
반성도 없이.
- 홍영철 시인의 시 '시계 소리' 전문
오늘은 홍영철 시인의 시 '시계 소리'를 읽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이후로 시계가 들려주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릴 때에는 창호지를 뚫고 들려오는 마루의 괘종시계 소리에 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했었다. 시인의 표현처럼 "뚜벅뚜벅 어둠 속을 걸어오는 발소리"처럼 일정하고도 끝 간 데 없는 시계의 초침 소리와 씨름하다가 지쳐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잠들기 전에는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공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기 일쑤였다. 이것이 내가 특히 심약한 아이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나 어릴 때 나와 같은 경험은 있지 않을까 싶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에서도 시계 소리는 동심에 깃드는 환상의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은 클라라는 기뻐 잠을 설치다 자정을 알리는 괘종시계의 울림과 동시에 쥐의 왕과 호두까기 인형이 펼치는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 잘 들리던 소리를 지금 듣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일상이 넘치는 소리의 공해 속에 빠져 있어 어지간한 소리에는 무감각해졌다는 것이 아닐까.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우리는 인위적인 소리의 홍수 속으로 휩쓸리게 된다. 출근길에 만나는 버스의 내뿜는 매연만큼이나 자극적인 경적소리, 사람들의 짜증 소리, 바쁜 소리......
온종일을 소음 속에서 무장해제의 상태로 살다 보니 소리를 듣는 우리의 마음이 무뎌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밤이 우리에게 편안한 안식을 보장하고 있지도 않다. 창을 조금만 열어도 세상의 온갖 소리가 낮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청각을 자극한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층간소음도 여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다.
이틀 전 새벽에 정신을 맑게 할 생각으로 집을 나서 거리로 나가보았다. 며칠째 도로에는 아스팔트 포장 작업이 한창이다. 오래된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새로 아스팔트를 포장한다고 야밤에 대낮처럼 불을 밝힌 채 차선을 막고 난리인 것이다. 이왕 편성된 예산이라면 진작 집행할 것이지 해마다 연말이면 이곳저곳에서 예산을 사용하느라 공사로 밤낮으로 시끄럽다.
이처럼 소리의 공해는 우리의 안식을 위한 밤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밤낮으로 시달리는 소리의 공해를 피하기 위해 효율적인 창호시스템을 갖추고 외부의 소리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정작 들어야 할 자연의 소리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했다. 눈 내리는 겨울밤에 들리는 무게에 겨워 눈을 털어내는 나뭇가지의 개운한 소리와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낙숫물의 경쾌한 소리와 같은 삶의 정겨운 풍경들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현실은 사라져 가는 삶의 풍경뿐만 아니라 어릴 때 듣던 시계 소리의 무서움과 환상과 같은 마음의 풍경까지도 삭제된 삭막하고 어수선한 것이 되어 버렸다.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배경이 지워진 날것의 현실을 마주하는 씁쓸함을 안고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