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모자를 폭 눌러쓴 헙수룩한 차림의 한 사내가 인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황무지를 걸어간다. 텁수룩한 수염에 퀭한 두 눈의 눈동자는 불안한 시선을 담은 채 하염없이 걸어가는 사내.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파리, 텍사스'는 라이 쿠더의 흐느끼듯 흘러가는 기타 음악을 배경으로 이처럼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 트래비스(해리 딘 스탠튼 扮)는 이렇게 걸어가던 중 사막에 있는 작고 허름한 주유소에서 물을 청하다 탈수 증세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시골 마을의 작은 병원에서 머물던 트래비스에게 그의 동생 월트가 찾아오고 월트와 그의 아내 앤의 노력으로 트래비스는 4년 전 현실로부터 떠나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기 이전의 삶을 조립하듯 하나하나씩 떠올리게 된다.
트래비스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내 제인(나스타샤 킨스키 扮)이 있었고, 두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들 헌터가 있었다. 그러나 짧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은 트래비스 자신의 음주벽, 아내에 대한 의심과 질투에 의해 깨어지게 되었음을 기억해낸다. 트래비스의 난폭함을 견디지 못한 제인이 집을 떠나고 이에 절망한 트래비스 자신은 행복을 망쳐 버린 자괴감과 슬픔에 스스로를 지운 채 그의 영혼이 길을 잃게 되었음을.
제수인 앤의 귀띔으로 아들 헌터와 함께 아내 제인을 찾아 나선 트래비스는 텍사스 주의 휴스턴으로 길을 떠난다.
휴스턴의 한 키홀 클럽(keyhole club)에서 마주한 트래비스와 제인. 키홀 클럽이란 남자 손님이 칸막이방에서 유리 저편의 여자 종사자를 바라보며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일종의 퇴폐 업소이다. 제인은 이곳에서 업소 종사자로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업소 종사자와 손님으로 재회한 두 사람.
트래비스는 먼저 제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아름답고 젊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남자의 의심과 질투를, 못났던 지난날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말하자 제인은 거울 뒤에 감추어진 모습과 전화기 속 목소리의 주인공이 트래비스임을 알게 되고, 트레비스에게 힘들지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가슴 아픈 두 사람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이들의 재결합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트래비스는 제인에게 아들 헌터가 있는 곳을 알려주면서 "아들에게는 지금 당신이 필요해."라고 말한다.
4년 동안 떨어져 있었던 이후 잠시간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트래비스는 아들에게는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모자간의 만남을 먼발치에서 바라본 트래비스는 홀로 길을 떠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완전한 해피 엔딩에 이르지 못한 채 끝이 난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가 깊이 천착해온 두 가지 양상인 '가정에 대한 그리움과 그로부터 소외된 현대인의 고통'(1001 Movies, S. J. Schneider)을 가장 잘 포착해낸 이 영화는 1984년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게 된다. 폭력적이었던 자신으로 인해 가족을 잃게 된 트래비스의 사연은 제인과의 재회에서 한 스스로의 말로 드러난다. 트래비스와 제인이 함께 생활하던 트레일러에서 불의의 화재가 일어나고 제인에 대한 의심으로 제인을 묶어 놓은 채 잠을 자다가 화기를 느낀 트래비스는 혼자 트레일러를 빠져나오게 된다. 제인이 먼저 가족을 떠난 것이 아니라 트레비스가 가족을 버린 것이었다. 이 사실에 대한 죄책감과 고통으로 현실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갔던 트래비스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행복마저 빼앗았다는 사실에서 자신을 영원히 용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찾아올 수도 있는 행복을 가족을 위해 포기하고 지속적인 상실을 택한 것은 아닐까.
이 영화를 트래비스라는 인물의 상실감과 심연의 고독, 혹은 트래비스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미국 사회가 빠진 인간 소외와 소통의 단절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영화에는 그것을 연상케 하는 컷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시각으로도 이 영화를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래비스가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간 4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는 동생 월트의 질문에 트래비스는 텍사스의 파리를 찾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은 "부모님이 처음 사랑을 나눈 곳이야. 그러니까 난 그곳에서 시작된 것이지."라고도 말하고 있다.
트래비스는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의 행복을 깨트린 절망의 시간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의 삶을 처음으로 되돌이키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실제 미국의 텍사스 주에는 파리라는 지명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파리, 텍사스가 실제적인 장소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텍사스와 파리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지명을 조합함으로써 현실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곳, 자아를 상실한 트래비스가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곳을 뜻한다. 그러니까 지금은 상실한 낙원, 에덴과 같은 곳은 아닐까. 그래서 고향과 같은 낙원을 상실한 우리 모두는 거대한 공허 속에 내던져진 불안한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