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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Jun 13. 2024

우주의 역사는 멀어지는 지평선의 역사다

 "우주의 역사는 멀어지는 지평선의 역사"라는 그럴듯한, 실제로 그럴듯할 뿐만 아니라 시적이면서 엄청난 울림을 가진 이 말은 영국의 천문학자인 에드윈 허블이 한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아마도 우주의 팽창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표현한 말일 것이다. 허블이 적색편이를 이용, 허블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이라는 과목을 배웠거나 우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현재 우주에 대한 지식은 우주 탄생의 비밀에 한층 근접, 조물주 만이 알고 있을 법한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늘어갈수록 우리의 우주에 대한 지식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지식은 우주 탄생의 비밀에 꽤 근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최근 지식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주 탄생과 함께 생성된 것으로 우주 공간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우주의 대부분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말이다. 아직은 그 존재 만을 확인했을 뿐 그것의 구성은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말하자면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를 구성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와 같은 입자가 아닌, 전혀 다른 어떤 것이라는 뜻이다.

 우주의 나이 약 4만 7000년이 되었을 때 우주를 가득 매운 암흑물질은 자연계의 네 가지 힘 중에서 중력 만이 작용, 작은 천체들을 끌어들여 은하, 더 크게는 은하단을 형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모습을 형성한 데에는 암흑물질의 존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암흑물질의 중력에 의해 우주는 지금처럼 팽창하는 우주가 아니라 빅뱅 이전의 상태로 수렴하는 우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70억 년 전에 우주는 급팽창을 시작, 지금까지 우주는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주의 가속 팽창은 늘어난 암흑에너지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우주론 연구가 이 정도까지 우주의 실체에 접근한 것도 최근의 성과다. 대기권 바깥 우주 공간으로 허블 망원경을 쏘아 보내 지구 대기의 간섭을 받지 않고 우주에 대한 관측과 연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결과로 얻게 된 우주에 대한 지식은 알게 된 만큼 늘어가는 의문을 동반하고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우주는 둘째치고 세상 일에만 관심을 둔 사람에게는 심드렁한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과학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우주라는 주제만큼 우리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이끌어내는 것도 없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신화를 끌어들여 아름다운 별자리를 착안했다. 우리에게도 견우와 직녀의 러브 스토리가 있다. 그만큼 우주는 아득하도록 깊고도 광활하다.

 별자리를 관측하기에 대기가 맑고 건조한 겨울이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지만 화려하기로는 여름의 밤하늘을 다른 계절의 밤하늘이 따라올 수 없다. 어릴 때 여름밤더위를 피해 옥상에 올라 바라본 하늘의 아름다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까마아득한 천공에서 저마다 외로운 빛을 발하고 있는 별들과 천공을 가로지르며 여름 밤하늘을 장식하는 은하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굳이 대기오염이 심하지 않은 시골을 찾지 않아도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었던 여름 밤하늘의 풍경이었다. 옥상에 마련해 놓은 비치 체어에 상반신을 기대어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에게 시선을 오래 두다 보면 별들의 배경이 되는 깊은 어둠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문득 빛을 내며 나타났다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별똥별이라는 귀여운 이름으로도 불리는 유성이다.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한낱 먼지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이 또한 어릴 때 경험한, 잊히지 않는 여름 밤하늘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오염이 심해 말 그대로 별 볼 일이 없어졌다. 이처럼 별 볼 일이 없어진 시대에 에드윈 허블의 '멀어지는 지평선의 역사'라는 표현은 상상 속의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지평선의 끝자락이 우리 우주의 끝일 터. 우리의 지식은 앞으로도 이 지평선 너머를 알 수 없다.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우주라는 시공간에 속한 존재이기에 우리의 지식이 이 시공간을 벗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팽창하고 있는 우리 우주는 그만큼 확장된 사유를 가능케 할 수 있다. 이럴 때 에드윈 허블의 말은 울림이 큰 영감을 줄 것이다. "우주의 역사는 멀어지는 지평선의 역사"라는 간결한 말에서 시에서와 같은 감흥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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