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48년 작 '자전거 도둑'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다.
흔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걸작이라고 평가되는 이 영화의 진정한 명성은 가족의 사랑과 희망이라는 소박한,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을 가치를 다루고 있다는 것에 있다.
물론 가족애를 다룬 영화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지만 영화 '자전거 도둑'은 이 주제를 과장하거나 포장하는 것 없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에 이 영화의 생명력이 오늘에까지 미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패전국 이탈리아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일정한 일자리가 없어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리치(람베르토 마지오라니 扮)는 보다 안정적인 일을 위해서는 자전거를 필요로 하지만 이미 자전거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린 상태이다.
이에 아내가 가족이 덮는 이불을 전당포에 대신 맡기고 찾아온 자전거로 리치는 영화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구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자전거를 도둑맞고, 리치는 아들 브루노(엔조 스타이올라 扮)와 함께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 로마 시내를 헤매다 결국 남의 자전거를 훔치게 된다.
영화 '자전거 도둑'을 일컬어 프랑스의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가장 뛰어난 공산주의 영화"라고 평했다. 전후 공산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이탈리아의 사정으로 보아서 타당한 평가일 수 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대본을 쓴 체사레 자바티니가 이탈리아 공산당의 당원이었다.
그리고 네오리얼리즘이라는 용어의 정의 안에는 "가난한 문화를 배경으로 삼고 더 나은 사회에서는 부가 더 평등하게 분배될 것이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동 계급의 삶을 다룬 영화"(로저 에버트, 'The Great Movies')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좌파 작가 조엘 카노프는 이 영화에 대하여 "사회적 위기에 대한 비판이 불충분하다"라고 비평한 데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영화 아카데미 협회에서 이 영화를 1948년도 오스카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으로 선정했으니 반드시 이념적 기준으로 이 영화를 평가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히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가족의 사랑과 절망 가운데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메시지에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사랑과 희망이라는 주제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데 다음과 같은 영화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우선, 이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연기자가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출연자들의 연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특히 아들 브루노 역을 맡은 엔조 스타이올라의 연기는 그것이 영화 속의 연기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한다. 그것은 영화 속의 내용이 실제 그들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리치와 아들 브루노가 자전거를 찾아 로마 시내를 헤매고 다니면서 전후 이탈리아의 어둡고 피폐한 실상과 빈부의 격차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어 영화의 내용에 대한 진솔한 접근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하여 1952년 영국의 영화 전문지인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로 선정한 바 있다.
지금도 그 평가가 유효한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는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부자관계의 묘사"라는 영화 평론가 조너선 로젠바움의 말처럼 부자 사이의 신뢰와 끈끈한 유대가 감동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남의 자전거를 훔치다 붙들렸지만 아들의 존재로 처벌을 면하고 풀려난 후 슬픔에도 눈물을 참으면서 아들 브루노의 손을 잡고 앞을 응시하며 걸어가는 리치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영화의 결말이다. 그러나 이 엔딩 신에서 우리는 어두운 현실에서도 부자간의 연대를 확인할 수 있기에 영화는 절망으로 닫힌 공간이 아니라 희망으로 나아가는 열린 공간임을 믿고 그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