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이번 성탄절은 예년과 같이 활기차고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아닌 조용한 가운데 맞이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차분한 분위기도 아닌, 많이 움츠린 분위기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식당이나 카페 등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가운데 대목 특수마저 사라져 우울할 것이고, 일반 사람들도 오래 계속되는 일상의 제약 때문에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와 같은 기독교 교인에게는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축일인 성탄절마저 교회가 아닌 집에서 온라인으로 성탄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해서 예배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해마다 성탄 예배를 풍성하게 했던 성탄절 칸타타와 유아 세례가 빠진 예배의 모습에서 일종의 상실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싶다.
이처럼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예배의 지속으로 교회 공동체가 모일 수 없다는 사실에서 주변에서는 교회의 위기와 예배의 회복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이것은 바로 바이러스의 공포 앞에서 흔들리는 교회의 결핍에 대한 고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020년 전 아기 예수의 탄생 또한 결핍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33.3%가 구주로 믿고 따르는 예수의 탄생이 반듯한 방이 아니라 허름한 마구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건 자체가 엄청난 결핍이었다고 하겠다.
나아가 예수의 짧은 공생애의 마지막이 흉악범에게나 행해지던 십자가형이었다는 것, 이렇게 성경이 기록하는 예수의 생애 자체가 결핍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에 복음(GOOD NEWS)의 함의가 응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해마다 한 번씩 찬양으로 봉사하는 곳에 '광명의 집'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출석하는 교회가 속한 교단의 은퇴 목회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곳으로 광명교회라는 이름으로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모두 70~80대의 나이에 그나마 10명 남짓한 인원이 쓸쓸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한 독지가의 헌금으로 땅과 건물을 갖추고 있지만 세상의 많은 교회에 비해 조직이나 활동이 초라하기까지 한 이곳이지만 해마다 이곳에서 찬양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나는 신앙의 토대로 믿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많은 곳이 부족한 이곳이 교회의 참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즉 교회란 한없이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완성을 이루어가는 신앙 공동체라는 깨달음과 함께 이루어야 할 완성은 오직 신앙이며, 그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은퇴한 목회자들이 만들어가는 신앙 공동체의 가난하지만 욕심 없는 모습에 비해 세상의 많은 교회들이 지나치게 가진 것이 많아 종종 교회 바깥의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불편한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교회가 빠진 성장제일주의와 물질주의의 덫은 그만큼 교회를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부자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곧 교회에도 적용되는 것이리라. 교회가 부유할수록 그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다. 일부 교회에서 벌어지는 교회의 사유화나 세습과 같은 파행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늘 예수는 마구간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으로 왔다. 코로나로 인해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아쉬운 성탄절에 한국 교회의 안타까운 실상과 이 결핍의 사실이 던지는 의미, 곧 결핍이 복음이 되는 놀라운 신앙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