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어둡고 추한 면에 대한 거친 풍자

by 밤과 꿈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1976년에 제작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는 월남전 참전용사 트레비스 비클(로버트 드 니로 扮)을 통해 뉴욕이라는 도시와 미국 사회의 어둡고 추한 면을 부각한 영화다. 스콜세지 감독 스스로가 뉴욕에서 태어난 이탈리아계 이민 출신으로 도시 하층민의 삶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 이러한 경험이 이 영화를 비롯, 전작인 '비열한 거리'에 잘 스며들어 있다. 더하여 영화 '택시 드라이버'는 베트남전의 상흔이 미국 사회 전반을 짓누르고 있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베트남전 참전용사 트레비스 비클을 등장시켜 베트남전과 미국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


트레비스 비클은 뉴욕에서 야간 택시를 운전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퇴역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득한 비클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어둡고 타락한 면면들을 좇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뉴욕에 대한 비클의 감정은 "언젠가 큰 비가 내려 거리의 모든 쓰레기들을 씻어낼 것이야."라는 독백 속에 잘 드러나고 있다.

해병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비클은 전쟁 후유증으로 지독한 편집증에 의한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증세는 자신을 사회에서 유리시키고 고독을 깊게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 극복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비클은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 정당의 선거 운동원인 베치(시빌 셰퍼드 扮)에게 관심을 두고 데이트를 신청하여 첫 만남을 이루지만 그녀를 대하는 서투른 태도에 만남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에 비클의 소외감과 반항적인 성격은 더욱 심해져 자신이 사회에 적응하는 대신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자신이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고 이의 실행을 위해 총기까지 구입한다.

편집적인 과대망상이기도 한 비클의 강박 증세는 자신이 제거할 첫 목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를 암살하는 것이었지만 실패로 끝난다.

이후에 택시를 운전하다 길거리에서 12살의 나이 어린 매춘부 아이리스(조디 포스터 )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를 사회의 악으로부터 구출하고자 하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아이리스에게 매춘부의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설득하는 비클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악에서 그녀를 구하기 위한 행동을 결심, 스킨 헤드족과 같은 머리를 하고 사창가로 찾아가 포주와 아이리스를 만나고 있던 남자를 총으로 난사, 유혈이 낭자한 충격적인 현장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문제작으로서 영화 '택시 드라이버'가 가지고 있는 1970년대라는 시의성(1970년대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반전운동, 민권운동에 더하여 페미니즘과 동성애 등의 사회적 이슈가 혼재하여 등장한 시기였다)이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을 이끈 큰 요소이지만 영화 기법적으로도 전작인 '비열한 도시'에서도 사용했던 '슬로 모션' 기법을 이 영화에서는 활용을 확대, 실감 나는 영상을 구현했다.

예를 들면 영화의 오프닝에서 뉴욕의 번화한 중심가인 맨해튼을 비클이 운전할 때 택시의 속도에 따른 화면을 정상적인 빠르기로 구성하는 한편, 비클의 심리에 따른 화면의 구성은 느리게 구성하고 있다. 또한 유혈이 낭자한 총격 신에서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쓴 채 아이리스의 방으로 가서 의자에 주저앉는 비클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피투성이가 된 방안의 모습을 훑어가다가 방 바깥으로 앵글을 옮겨 군데군데의 핏자국을 보여준 뒤에 다시 방안으로 앵글이 옮겨와 스톱 모션으로 처리된다.

이와 같은 시점 숏의 활용으로 해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트래비스 비클의 시점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는 칸느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미국의 아카데미에서는 홀대를 받았다. 그것은 이 영화가 파헤치고 있는 미국의 치부가 보수적인 미국 영화 아카데미협회로서는 부담스러웠으리라 생각된다. 국내에서도 수입이 되지 못하다가 1991년에 폭력적인 장면이 삭제된 채 비로소 상연되었다.

아이리스는 결국 부모에게 돌아가서 비클은 아이리스의 부모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는 한편, 비클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던 범죄 조직을 소탕한 영웅으로 사회에 복귀한다.

이 영화의 이러한 해피 엔딩은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부터 아쉬움으로 남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정의를 위한 폭력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영화에 의하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영화에 있어 윤리적인 측면은 도외시해도 좋은 것일까 라는 의문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영화를 반드시 진지하게 경험할 까닭은 없겠다는 쪽으로 편하게 이 영화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침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하여 "택시 드라이버의 결말부는 드라마가 아니라 음악과 비슷하다. 이 영화는 언어로 규정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닌 정서적인 분위기의 차원에서 끝을 맺는다...... 영화 내내 트래비스 비클의 심리 상태는 그의 현실을 규정했다. 결국 그의 심리 상태는 그에게 평온을 안겼다."(로저 에버트, '위대한 영화', 을유문화사)라고 썼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의도도 이와 같았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