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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희 Feb 12. 2016

꽃, 병

맨 발로 유리 위를 걷는 길

네가 점멸하듯 잠들고나면 나는 늘 소등한 것처럼 깜깜해졌다. 발에 채여 쓰러진 꽃병에서는 물이 쏟아져 이미 먹먹한 마음을 불렸다.

질척질척해진 마음은 미련이고,

아무리 닦아도 계속 배어드는 물은 그리움이지.

나는 꽃을 줍지 않는다.

스즈러줍어 자꾸만 발에 밟혀도 모른 척한다.

지난 연애다. 이미 지난 연애다.

되뇌이며 자꾸만 맨발로 꽃 위를 걷는다.

유리 조각이 박혀 피가 나는데도, 그런 줄도 모르게 꼭 감은 눈으로, 걷는다.

걷는다.

걷는다.

눈을 뜨면 코 앞에 흰 벽.

다시 돌아서면 아득하게 먼 길.

걷는다.

걷는다.

걷는다.

마취제같은 안개를 들이마시며 모두 다 잊고 보면 주위는 다시 온통 꽃 한송이만 꽂힌 꽃병 투성이.

나는 또 다시 엎지를 것이다.

아플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걷는다.

걷는다.

걷는다.
안개 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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