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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희 Feb 10. 2016

바보같은 소리

스물 둘이었던 날의 편지

엄마 나는 더 예쁘게 살 걸 그랬어.
그냥 누가 뭐라해도 반짝반짝 빛나는 열 일곱을, 스물을, 스물 둘을 살았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까워. 다시 교복을 입을 수도 없잖아. 근데 왜 그렇게 바보같았는지 몰라. 조만간 다시 대학을 다닐 수도 없는 날이 올거고 나는 또 후회를 하겠지? 그런데 엄마, 그럴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고 멋있게 사는 게 너무 어려워. 나는 그냥 다 그만 두고 싶어. 정말이야. 그냥 다 관두고 처음 보는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붕어빵도 사먹고 바람도 쐬고 음악도 듣고. 그러다 지치면 엄마랑 지혜랑 먹을 호빵같은 걸 사들고 집에 돌아오고 싶어.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걸 먹고 많이 웃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살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런데 엄마 그냥 그게 참 어려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거야? 아니면 나는 그냥 용기가 없는걸까? 여행을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해. 돈을 많이 벌려면 나중을 생각해야 하는데 미래를 생각하면 막 한숨이 나와. 번듯하게 살려면 대학 졸업장도 있어야 하고 그럴듯한 직업도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당장 학교 다니는 것부터가 곤욕이야. 웃을 때도 눈물이 나올까봐 힘을 주고 참을 때가 있어. 그래서 자꾸 웃는게 어색해져 엄마.


엄마, 올 지 안 올 지 모르는 미래때문에 지금이 불행한게 너무 웃겨. 그런데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거야. 내가 너무 어리석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될까? 그러려면 돈이 필요해.. 돈을 벌다가 벌써 스물 둘이 다 갔는데 통장 잔고는 스무 살 때랑 비슷해 엄마. 은행 이자보다 한숨이 더 쌓이는 것 같아. 나는 그냥 지금에서 도망가고 싶은가봐. 나가서 살고 싶다는건 엄마랑 사는 게 싫어서가 아니야. 그냥 울고 싶을 때 편하게 울려고 그래. 외로운 게 싫어서 누구라도 만나고 싶고 그래. 그런데 막상 누굴 만나려면 그것도 싫은거야. 이도 저도 못해서 그래. 혼자서도 예쁘게 웃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게 참 어려워. 좋아하는 사람이랑 멀어지는 건 아직도 힘이 들어. 가끔은 그게 세상의 전부같아. 아니란 거 알면서도 그래. 어차피 나아지겠지만 지금은 그게 제일 힘들고 서러워.

엄마. 예쁘게 사는건 왜 이렇게 어려워? 거울을 보면 스스로에 지쳐서 울상이 된 못난 애가 서 있어. 그게 싫어. 반짝반짝 살고 싶은데 금가루가 다 떨어져서 날지도 못하는, 소멸 직전의 팅커벨이 된 기분이야. 이러다간 요정가루를 얻으려고 온갖 추한 짓을 일삼는 검은 수염이 될까봐 무서워. 검은 수염은 예쁘지 않잖아. 아무에게도 사랑받지도 못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는 싫어. 그게 제일 무서운 것 같아.

엄마 그래도 나 잘 살게. 예전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건지 많이 알고 있어. 멍청한 짓을 할 정도로 어리지도 않은 것 같아. 그러니까 아마 잘 지낼거야.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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