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일기

아무튼 여름이엇따 .

by 효희


여름에도 영혼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초여름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 푸른 낭만. 어둠 같은 건 걷어버리고, 아무래도 좋으니 같이 빛나자고 약속하는 여름.

내 마음은 바보 같을 정도로 단순하고 정직하게, 여름빛에 떠오르고 찬 바람에 가라앉았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들을 경계하면서 정작 날씨가 생활이 되는 날들에 충실했다.

엉망이었다가, 행복했다가, 짜릿했다가, 동굴로 기어들어가 겨울 내내 숨어있다 다시 빼꼼, 고개를 내미는 날들이 이어졌다. 부끄러운 삶이지만 내가 나이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행복들을 생각하면, 달갑진 않지만 온전히 나로서 감당해야 하는 불행들도 견딜 수 있었다.

견딜 수 없는 건 기대하는 게 없는 시간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미한 날들이 나를 덮칠 때면 사는 게 꼭 무자비한 벌 같았다.


어느 날의 날들은 너무 바보 같아서, 코 앞의 나를 돌보지 않으면 줄줄이 이어진 가깝고 먼 미래의 내가 모조리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줄줄이 소시지처럼 손에 손잡고 이어진 나의 하루들이, 그 하루의 스스로들이 미련하고 가련하고 귀찮고 버거웠다.


울고 싶은 마음을 쫓아내려 산책을 다녀왔다.

어딘가에서 외로움을 묻혀왔는지 들어선 현관에 주저앉아 울게 됐다.

독소를 배출하는 것처럼 한참을 쏟아내고 나면 스스로에게 쑥스러울 정도로 허기가 졌다.

그럼 또 저녁이 맛있다. 울었던 나에게 미안할 정도로. 스스로를 한심해한 내게 염치없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여름은 좋다. 여름이 좋은 이유야 수도 없지만, 그중 하나는 수박이다.

요즘이야 하우스 재배로 겨울에도 수박을 먹을 수가 있겠다만 여름 수박은 뭔가 다르다.

여름엔 수박, 겨울엔 귤과 딸기. 그런 제철 음식들로 속을 채우다 보면 계절이 나를 살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우울증에 걸려 죽고 싶어 하는 언니에게 겨울엔 붕어빵으로, 봄에는 딸기로, 여름엔 복숭아로 꼬시며 계속 계속 살아내자고 한다는 동생을 안다. 겨울의 흰 눈을, 한여름의 초록을, 달큰한 수박을, 새콤한 딸기를 맛 보여주고 싶어서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는 작가를 안다. 계절은 참 많은 사람을 살려낸다. 죽이기도 하겠지만은.


얼마 전엔 중복이라고 해서 퇴근한 엄마를 데리고 가 삼계탕을 먹였다.

‘사드렸다’고 표현하기보다 ‘먹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위에 지치지 않게 보양을 시키고 싶다는 마음. 좋은 것을 먹이고 쉬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내가 태어나고부터 엄마가 나에게 줄곧 해준 것을 나도 그대로 해주고 싶다는 애틋함. 갚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돌림노래처럼 이어지는 마음이다. 어느새 엄마가 나에게 하는 잔소리보다 나와 동생이 엄마에게 하는 잔소리가 많아져 엄마는 귀찮아하면서도 웃는다. 엄마 물 마셨어? 엄마 밥 먹었어? 엄마 마그네슘 챙겨 먹었어? 짜증 조금 애정 조금 섞어서 하는 말들을 엄마는 모두 사랑으로 받는다. 엄마 건강해, 엄마 아프지 마, 그렇게 번역하면서. 딸내미는 엄마의 애정 번역기를 믿고 이렇게나 말을 막 던진다. 가끔은 그게 머쓱하고 미안해.


한 계절이 갈 때마다 강아지의 눈빛이 희게 변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 너무 더운 여름과 너무 추운 겨울엔 산책도 못 가는데, 인간들은 부지런히 계절을 맞을 채비를 한 채 나가버리고 강아지는 집에 남는다. 무엇을 하고 있나, 카메라를 들여다보면 강아지는 늘 누워있다. 누운 채로 너무 더운 여름과 너무 추운 겨울이 몇 번이나 지났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만 안다. 끝나는 순간 너무 많이 울 것을 알면서도 끝이 나기 전까지는 소중함을 모른다는 게 인간의 업보 같다.

업보의 바보들. 바보의 업보들.

태어나는 아기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끝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우는 걸까. 태어나면서부터 너무 많이 우는 우리는 우리를 떠나는 것들에 매번 울고 또 결국 떠나며 모두를 울게 만든다. 지구에 물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물로 뒤덮인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도.


한 계절이 지나갔다는 것은 일 년의 4분의 1 정도가 또 훌쩍 흘렀다는 뜻이다. 어느 외국인이 12개월 할부를 온 계절에 걸쳐 갚겠다는 말로 표현한 것을 보고 뭐든 서툴 때가 가장 솔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돈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할부인 것 같다. 업보도, 마음도, 상처도. 한 번에 크게 아프던지, 여러 날에 걸쳐 조용히 자주 아프던지 결정할 순간이 온다. 한 번도 할부를 한 적이 없던 내가 올해는 엄청나게 늘어난 카드값을 못 이기고 항복했다. 그러고 보니 할부를 한다고 해서 조금씩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는 말을 아프게 경험하는 날들이다. 할부를 조심합시다… 방심하다간 깔려 죽을 수 있으니까…


어쨌든. 7월에 쓰기 시작한 글을 8월에 마친다. 아직은 여름이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위안이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올해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해도 조금 덜 울고 싶다. 나를 덜 한심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년 여름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보다는 겨울도 담담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 서른 둘 나의 장래 희망은 이렇게나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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