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공원중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 Jun 17. 2024

호사스러운 삶

- 신이 마음껏 살아보라 한다면


 나는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땐, 집 앞 공원에 자주 간다. 공원에 가면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뭐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글을 끄적이기도 한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거기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그래서 지인들이 일상적인 안부 연락을 했을 때, 나는 공원에 있을 때가 종종 있다.


  "뭐 해?"

  "나 공원에 돗자리 깔고 자빠져있어."

  "거기서 혼자 왜?"

  "그냥. 사람 구경도 하고 책도 보고."

  "혼자 괜찮아? 좀만 있다가 들어가."


 꽤 많은 사람이 '혼자,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있는, 나'를 안쓰럽게 여겼다. 그때, 나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행보를 다른 사람들은 색다르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돗자리 위에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람들은 있었지만, 나처럼 혼자인 사람은 없었다. 나는 왜 공원에, 그것도 혼자서 돗자리를 펴는 걸까? 이유는 없다. 그저 내가 좋아서일 뿐.


  만약 신이 나에게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아주 제대로 '호사(豪奢)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내 취향의 호사스러운 인생 말이다.

나는 푸르른 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을 때 참 행복하다. 그 순간은 내가 기회가 될 때마다 하고 싶은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행위이다. 그것과 같은 호사를 많이 누리려면,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이건 아주 쉬울 것 같지만 어렵다. 내가 살아온 삶은 나 한 사람만의 만족을 위해 달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 당장 신이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 해도 내가 원하는 호사스러운 삶으로 떠날 수 있을까? 어버버 하다가 또 이번 생과 비슷하게 어설프게 살다 가면 큰일이다.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보자.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자빠져있는 것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일. 나는 그 안에 내가 챙겨야 할 준비물이 있다고 믿는다. 아주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 볼까?

  

푹신한 공원잔디


 첫 번째, 틀린 그림 찾기 게임. 틀린 그림 찾기는 사진이나 그림을 원본과 아주 미세하게 고친 수정본을 보고 다른 부분을 찾는 게임이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이 게임만은 재밌다. 이 단순한 게임을 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면서 머리가 개운해진다. 다음 스테이지로 레벨 업될 때 밀려오는 기분 좋은 성취감은 보너스. 이 게임이 재밌는 이유는 나의 예민한 감각을 마음껏 발휘하는 경험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본디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타인과 사회와 잘 맞춰 돌아갈 수 있게 스스로를 둥글게 둥글게 갈아냈다. 나의 예민함을 걸림돌처럼 여겼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니, 내가 챙길 첫 번째 준비물은 나의 예민함을 마음껏 발휘하며 사는 것이다. 나의 예민함을 마음껏 반기며, 내가 가진 큰 장점으로 여기는 삶을 살고 싶다.  


 두 번째는 호기심과 관련된 것들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공원에서 빈둥거리기를 즐기는 나는 호기심이 충만한 인간이다. 자연이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이 좋고,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시간이 행복하다.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다른 곳에선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지 가서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다. 그러니 나는 마음껏 떠도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  


 세 번째는 이야기. 나는 이야기와 관련된 것들에 몰입한다. 책, 영화, 노래 가사 등 이야기가 담긴 창작물을 즐긴다. 영화를 사랑하고 책을 신뢰하며, 노래 가사에 감동한다.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직접 써 내려가는 것도 좋다. '이야기에 둘러싸여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한다. 이야기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더 믿어보고 싶다.   


 호사스러운 삶에는 철저하게 '나 자신'이 있다. 내 마음에 썩 들지 않는 것은, 나에게 기쁨이 될 수 없고 만족을 줄 수 없다. 그러니, 나는 나를 더 들여다볼 것이다. 내 안에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더 들여다볼 것이다. 어느 날 신이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어디 한번 마음껏 살아보라'라고 한다면, 나는 세 가지 준비물을 챙기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우물 하나를 챙겨 현관문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 정말…… 정말, 정말 이래도 되나 싶게 호사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


멋지게 뻗은 소나무
매거진의 이전글 무례한 침입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