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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ul 05. 2024

약점,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

-나의 약점은 약점일까?

 

 둘째 아이는 눈물이 참 많다. 무슨 말만 하면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부터 맺히는 통에 할 말을 제대로 못 하겠다. 내가 한 말은 고작 "소파에 벗어둔 옷은 치워야지." , "약속했으면서 왜 그래." , "일단 스스로 먼저 해봐. 엄마한테 도와 달라고 하기 전에." 정도이다. 말은 내용과 톤이 혼합되어 의미를 갖는데, 내가 한 말은 내용적으로도 톤으로도 혼내는 말이라기보단 잔소리에 가까운 말이다. 그런데도 사슴 같은 눈망울에 눈물이 차오르는 걸 보고 있자면 내가 아주 무정한 악당이라도 된 기분이다. 사실 좀 억울하다. 누구나 부정적인 말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둘째 아이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최근 아이에게 편식의 징조가 보였다. 어렸을 적부터 별명이 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르스였을 정도로 아이는 육류를 아주 좋아했다. 고기를 제일 좋아하기는 하지만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어서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저녁 메뉴가 뭔지 미리 확인하고 육류가 아니면 실망하는 반응이 역력했다.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엄마가 밥 할 때, 네가 고기를 좋아하는 게 참고 사항 정도였는데 요즘은 네 눈치가 보여. 너 생선도 잘 먹고 된장찌개도 잘 먹었었는데 요즘은 엄마가 그런 거 먹자고 하면 네가 싫은 내색을 하는 게 너무 느껴져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 눈 주위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굴러내리는 아이의 눈물을 못 본척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은 네가 편식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더 이상 못 본 척하면 사람도 아니다. 나는 휴지를 내밀며 아이를 달랬다. 혼내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도 알아. 나도 항상 그냥 얘기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눈물이 막 나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쏟아지는 눈물을 휴지로 찍어내며 아이가 말했다. 흐르는 눈물에 대해 그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자기도 잘 알고 있지만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아이의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눈물바람으로 자신의 약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유약한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그런 적이 있던가? 내 아이처럼 나의 약점을 햇볕 아래 펴서 말려본 적이 있던가?


겁도 없이 거침없이 올라오는 비비츄


 나의 약점은 '생각이 많고, 감각이 예민하고, 정리 강박이 있고, 책임감이 과하고, 배려가 지나치고, 체력이 약해 쉽게 피로하고, 약한 것에 약하고, 이해되지 않는 걸 그냥 못 넘어가고, 거절에 서툴고, 불안정한 상황을 싫어하고, 싫어도 내색하지 않고, 정의감에 휩싸여 열을 낼 때가 있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속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사람에게 기대가 없고, 화를 참고, 실망하면 정이 한 번에 떨어지고, 해야 할 일을 대충 넘어가지 못하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강한 척하고, 괜찮은 척하고…….'  


 순식간에 써 내려간 게 이 정도다. 솔직히, 내가 가진 약점을 다 펼치자면 종이가 모자랄 것 같다. 이러니 어찌 햇볕 아래 펴서 말릴 수 있단 말인가. 펼치려고 자세만 잡았을 뿐인데 다들 놀라서 도망가버릴 것 같다.  


 영화 <굿 윌 헌팅>에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천재 윌(맷 데이먼)과 심리 치료사인 숀(로빈 윌리엄스)이 등장한다. 윌이 자기가 만난 여자가 얼마나 완벽한지에 대해 이야기하자 숀은 자신의 죽은 아내에 대해 이야기한다. 숀은 자다가 자기가 뀐 방귀소리에 놀라 깼던 아내의 일화를 얘기하며, 불완전하고 약점 투성이었던 아내의 모습이 가장 그리운 모습이라 말한다. 숀은 윌에게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남들은 그걸 약점으로 보겠지만 그렇지 않아.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넌 완벽하지 않아. 환상을 깨서 미안하지만 네가 만난 그 여자애도 완벽하진 않지. 중요한 건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남녀 관계란 바로 그런 거지."


윌과 숀


 영화를 보면서 나의 약점을 마주하고 펼쳐 보이는 대상은 누구여야 할까 생각했다.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일 누군가 말이다. 첫 번째로 떠오른 사람은 종이가 부족할 정도로 약점이 많은 나 자신이었다. 약점을 펼치자니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발동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내가 가진 약점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아량을 베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둘째 아이의 고백에 내가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냈던 순간처럼 말이다.


  다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어쩌다 서로의 세계로 끌어당겨 끌려온 이들. 불완전한 나의 세계로 끌려오고, 불완전한 그들의 세계로 초대해 준 선택된 자들. 그들에게는 내가 가진 약점을 좀 더 드러내며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이토록 별로인 점이 많은, 별로인 인간임을 펼쳐 보이는 것도 그들과 나눌 수 있는 삶의 묘미일지 모르겠다.  


 언젠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때 '정말 완벽했던 사람'이 아니라, '햄스터 같이 예민하면서 코끼리인 척하고, 비리비리한 게 힘들면서 알아서 다 할 수 있다고 낑낑대고, 좋다고 웃고 떠들었으면서 혼자 있고 싶어 하고, 지가 아니면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기를 쓰고 애를 쓰던 이상한 사람'이어도 좋을 것 같다. 그게 나여도 괜찮을 것 같다.


뭐든 만사 귀찮아해서 귀여운, 공원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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