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공원중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 Jul 29. 2024

"짜릿해! 늘 새로워, 다정한 게 최고야!"  

-다정함에 대한 찬양


 간절하게 원했던 공모전에서 낙방한 직후였다. 나름 열심을 다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기분을 풀고 싶어, 노력한 시간에 비례해 최대한 나태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앉아있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일단 자빠져 누웠다. 소파베드에 다리 한 짝을 올리고 최대한 잉여로운 자세를 취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서 천장만 바라봤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렇게 멍 때리며 있는 건 너무 건강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꺼내고 OTT 시리즈물을 검색했다. 눈알이 시큰거리도록 미드만 볼 참이다. 유혈이 낭자하는 범죄물을 골랐다. 경찰이면서 연쇄살인마인 주인공이 법망을 피해 가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비열한 악인들을 처단하는 것을 지켜봤다. 주인공은 마음먹은 대로 뭐든 해냈다.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치기도 했지만, 세상은 언제나 결국 주인공 편이었다.  


 '쳇! 부럽네.'


 고르고 고른 미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사가 제대로 뒤틀린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신세한탄은 멈출 기미가 없었고, 속사포 랩이 되었다가 구성진 가락이 되었다. 옆에서 각자 핸드폰을 하며 놀고 있던 아이들의 무고한 귓바퀴에 한 서린 가락이 흘러들어 갔다.  


 첫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네 생각엔 도대체 엄마가 왜 떨어진 것 같아?"

  "엄마, 실력이 부족하면 작은 공모전을 노려."

  "뭬야?"

  "그렇게 큰 공모전에 넣으니까 안 되지. 실력 맞게 아주 작은 곳에 넣어봐."


 로봇이 아닐까  가끔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성적인 첫째 아이다운 말이었다. 갑자기 날아온 뼈 때리는 직언에 정신이 얼얼했다. 나도 안다. 쓰라린 결과는 내가 부족해서임을.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엄마, 이번에 엄마한테 부족했던 게 뭔지 알아?"

 이번엔 둘째 아이가 말했다. 아이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부족'이라는 단어가 벌써 명치끝을 강타했다. 나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잔뜩 움츠러들었다.

  "LUCK. 이번에는 행운이 부족했어. 엄마는 모든 준비가 다 됐으니까, 다음번엔 꼭 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고막이 녹아내리고, 이가 썩을 정도로 달콤한 말이다. 공감능력이 발달한 둘째 아이다운 말이자, 지쳐있던 나에게 필요한 위로였다. 죄 없는 아이들은 그만 괴롭히고, 죄 많은 미드도 이제 그만 놓아주고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을 걷는데 둘째 아이의 위로가 자꾸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둘째 아이는 비단 오늘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다정한 면모를 드러낼 때가 많다. 어떻게 이토록 다정할까?

 

한 발 앞에 꽃길


 인간의 다정함을 인류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한 재밌는 책이 있다. 브라이언 헤어와 베네사 우즈의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이다. 이 책은 '다정함'을 인류 진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이러한 접근이 신선하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정함은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략 정의할 수 있는데, 다정함이 자연에 그렇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속성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다정함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는 인간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마음이론 Theory of Mind)이 있어 협력과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바로 이런 능력이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타인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공감하는 다정함의 영역을 생존과 즉결되는 특성으로 분석한 것이다. 고로 생존에 가장 유리하고 적합한 자는 강한 자(the Strongest)가 아니라, 다정한 자(the Friendiest)이다.


 다정함이 생존에 유리하다니 세상이 다정한 사람들로 넘쳐날 것 같지만 일상에서 다정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각박한 요즘 세상에 다정한 사람들은 천연기념물만큼 귀하다.  


 최재천교수는 이 책을 추천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성악설과 성선설 사이에서 흔들리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조간신문과 저녁 뉴스가 들려주는 사건, 사고 소식에는 인간의 잔인함이 넘쳐나지만,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다정한 것이 점점 더 좋아진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것도 나이가 들수록 더 깨닫게 되니, 나에게는 다정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 생겼다. 특히 다정함을 지키고 가꿔온 다 큰 어른들 말이다. 그들이 가꿔낸 다정함에는 대단한 것들이 잔뜩 들어있다.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세상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녹록지 않은 세상을 향한 당찬 발걸음 같은 것들 말이다.


 한 배우의 표현의 빌어 전한다.

  "짜릿해! 늘 새로워, 다정한 게 최고야!"


다정한 곰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나, 칭찬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