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우리 엄마!

급히 가버리신 우리 엄마의 마지막을 기록합니다...

by 지나리






요즘 내 인생 시계에 정말 돌이라도 달아 놓은 듯 하다.

아니면 엔진에 파워 부스터라도 주입한듯...


연초부터 병환이 심해지셔서 결국 순식간에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글을 쓰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제 영영 엄마를 만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지난 몇 주가 어떻게 지나가 버렸는지도 모르겠고, 지금의 삶이 현실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 흐르고 있다.


그러다 어젯밤 너무 선명한 엄마의 꿈을 꾸고 나서,

'정신차리자! 그리고 내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자!'

그렇게 컴퓨터앞에 앉게 되었다.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들, 절대 잊으면 안되는 이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서 말이다.



급하게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입원을 하시고..

처음에는 링거덕분인지, 기력을 차리시기 시작했고 전혀 대화가 되지 않던 엄마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었다. 물론 치매가 심하신 상태라 정상적인 내용의 대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 이렇게 조금씩 괜찮아 지시면 다시 집으로 가실 수 있겠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 4시에 퇴근을 하면 집에 가는 길목에 있는 병원에 들러 면회허용시간인 30분 풀로 채워 엄마를 보고 귀가를 했었다.

내가 가는 시간은 대분은 5시에서 6시사이. 저녁식사는 끝나신 상태셨고 그렇기에 주로 내가 하는 일은 양치시켜드리기, 손톱과 발톱깎아 드리기, 물병에 보리차물 타서 넣어 드리기, 새수시켜 드리기, 손과 발 씻겨드리기 등등... 정말 작아도 너무 작은 부분들이었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수 있어 더없이 소중하기만 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딱 2주정도였다.


엄마의 상태가 다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식사를 거부하셨고, 약은 신경질적으로 거부하셨으며, 주사를 맞지 않으려 하셨다. 식사와 약, 그리고 주사약이 공급되지 않으면 엄마는 살아 가실 수가 없으니 화도 내어보고 달래도 보고 했다. 다행히 싫다 하시면서도 딸이 애쓰는 걸 아시는지 나의 말은 간간히 들어 주셨고 간호사분들도 그분들의 전문적인 노하우로 잘 보살펴 주셨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8월 초에 입원하신 엄마는 8월 20일경이 지나자 너무 급히 상태가 좋지 않아 지시더니 결국 폐렴이 찾아 오고야 말았다.

병원에서는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권하셨고, 우리도 동의하여 병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신부전 5기에 당뇨, 치매가 심한 상태의 어머니를 받아 주는 병원은 아무데도 없었다. 의료대란이 일어난 요즘의 상황이니 더더욱 난관이었다.

결국 엄마는 요양병원에 계속 계셔야 했고, 선생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써보자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전 말기의 엄마에게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결국 염증수치는 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아무래도 인사하실 가족분들이 계시면 오시는 것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

청천벽력같았다.

입원한지 한 달도 안되었고, 입원 후 좋아지시던 모습도 선한데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다니...

흥분한 나와는 달리, 예상외로 아버지께서는 덤덤하셨다.

"너희 엄마 내가 요양병원에 입원시킨다고 마음먹은 그 때, 나는 이미 마음준비를 하기 시작했었단다..."

엄마를 3년동안 옆에서 돌봐오신 아버지께서는 엄마의 상태를 계속 보아오셨고, 자기관리가 정말 중요한 당뇨와 신부전을 앓으시는 엄마의 치매가 극에 달하시자 엄마를 케어하시는 것에 한계에 다다르게 되셨던 아버지는 이미 어렴풋이 이 날을 예견하셨던 듯 하다.

힘이 닿는 한 집에 있게 하시고 싶었던 아버지는 정말 젖먹던 힘까지 짜내셔서 엄마를 케어하셨고 한계에 다다른 그 때 '이제는 여한이 없다' 는 마음으로 엄마의 입원을 결정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이 8월하고도 25일경...

아직은 앉아서 죽을 드시고, 힘겹게나마 이야기를 하시는 엄마시기에 슬픈 마음은 잠시 또 접어 두고 매일 같이 병문안을 갔다. 엄마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정해진 시간보다 오래 있어도 병원분들은 아무 말씀없이 놔둬 주셨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듯 일주일이 지나고...

9월3일 4시... 퇴근을 하고 탈의실로 향하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불길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고..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위독하시다는 말씀... 내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운명하실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정신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상태로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안에서도 계속적으로 눈물은 흐르고 울면서 아버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모두가 병원에 도착을 했고 나는 이미 엄마가 별세하신마냥 통곡을 했다.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는 엄마는 힘겨운 호흡을 이어나가며 고통스러우신지 미간이 찡그러져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다행히 엄마의 심박수, 혈압, 산소포화도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고 수치가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한 고비 넘긴 것이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이러다 다시 급격히 안 좋아 지시거나 혹은 왔다 갔다하는 상태가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시며 결론적으로 한치앞을 알 수없다고 하셨다.

특별히 허락을 받아 그 날은 저녁 7시까지 엄마 손을 잡고 있다가 귀가를 했다.

불안 불안한 마음으로 수요일, 그리고 목요일이 되었다.

4시 퇴근을 한 시간 앞둔 3시경..

병원으로 부터 걸려온 전화... 두 번째여서 그런지 눈물보다는 '침착 침착' 주문을 외우며 조퇴를 올리고 급하게 택시를 탔다. 다리가 불편하신 아버지께는 일단 출발하시지 마시고 준비만 하시고 계시라하고 병원에 도착을 했다. 급격하게 수치가 내려가서 전화를 했는데 다시 조금 오른 상태. 조금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수치가 그 전만큼 다시 올라가지는 않았다.

"아빠, 헛걸음 하시더라도 오셔요. 어쩌면 오늘이 진짜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고민을 한 나의 결론이었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살아있는 우리가 몇 번의 헛걸음 쯤이야 하면 어떠랴... 하루라도 더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아버지가 오셨고, 수치는 정상보다 조금 밑도는 수준으로 유지가 되었다.


7시쯤 되니 자리가 불편하여 많이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를 뵈니 안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이야기하여 모셔다 드리고, 남편도 집으로 귀가를 시켰다. 그리고 나 혼자 엄마곁을 지키기 시작했다.

다음 날 부랴부랴 휴가를 내 놓은 상태여서 오늘 만큼은 허락하는 시간까지 있고 싶었다.

수치는 여전했지만 엄마의 상태가 평소와는 확실히 달랐던 것일까, 간호사분들은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많은 장비들을 가져다 주시기 시작했다. 그 분들의 따뜻한 배려로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밤 10시쯤 되어가니 나역시 슬슬 힘이 들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식사도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울면서 앉아 있었더니 살짝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탈수증세의 초기라는 것을 이 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도 눈을 부릅뜨고 엄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수치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고 11시쯤 되니,

'그냥 오늘은 집에 가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와서 내일 낮을 지키는게 나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밤을 새고나면 내일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왠지 오늘은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가 이 늦은 시간에는 가지 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가시더라도 이 오밤중에는 가지마요. 오늘은 꼭 버티셔요. 가시더라도 날짜 바뀌고 새벽이 오면 가요. 아니, 좀 더 계시다 낮에... 아니 좀 더 계시다 추석은 보내고... 더 허락된다면 내년 팔순잔치라도 하시고....'

그렇게 생각하다 다시한번 눈물이 터져 한바탕 쏟아냈다.

그리고 나의 바램대로 12시를 넘겨서도 수치는 유지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1시가 넘어 가자 순간 적막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탈수증세가 조금 더 심해진 탓도 있을 것이고 새벽에 출근을 해서 한숨도 자지 못했으니 비몽사몽간이기 해서였던지 엄마의 힘겨운 호흡소리가 탱크소리마냥 크게 들려오고 호흡한번 하실 때마다 온 몸이 같이 흔들려 침대까지 흔들리니 순식간에 공포감이 몰려 왔다. 엄마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금 눈에 담은 엄마는 정말로 고통스러워 보이셨고 정말로 힘겨워 보이셨다. 몽롱한 정신사이로 눈물이 또다시 비집고 나왔다.

'엄마... 이제 그냥 가세요... 이제 그냥 가서 편해 지세요.. 엄마... 제발 이제 그냥 가요... 제발 이 고통을 끝내세요...'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주문을 외듯 그렇게 계속...

그렇게 한지 십여 분만에... 엄마의 모든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박수 30 산소포화도 30 혈압 측정불가... 순식간에 수치가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번쩍 정신이 들어 간호사선생님을 불렀다.

급하게 입안 가래를 빼내고 기계를 터치해 보고 하지만... 엄마의 숨쉬는 간격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안에 돌아 가시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옴 몸에 힘이 빠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짓말까지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울다 멈추고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았다. 한번 쉬는 숨이 훨씬 더 힘겨워 졌다.

그러기를 수 분후... 온 힘을 다해 쉰 마지막 숨을 끝으로... 엄마는 더이상 숨을 쉬시지 않았다...


부랴부랴 당직 의사 선생님이 내려오셨고...

"운명하셨습니다."



2024년 9월 6일, 새벽 1시 58분...

우리 엄마는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오열을 하던 나는 탈수증이 심해져 2시간을 먹은 것도 없이 물만 토해냈고,

그 상황에서도 장례를 준비해야 하는, 모두가 맞이하는 그 아이러니 한 흐름속에 던져졌다.

(하지만 그 흐름이 슬픔에 잠식하여 질식하지 않도록 나를 살리는 일임을 나중에는 깨닫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직장에 복귀한 후 퇴근을 하면서 한달 간 들른 병원을 그냥 지나치던 그 순간에는 울컥했지만

3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구름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살고 있다.

엄마가 힘겹게 숨을 쉬시던 모습과, 마지막 숨을 쉬시고 난 후의 평온한 얼굴의 모습.

그 두 장면속의 엄마가 내 머릿속에 번갈아 떠오르며,

'임종지키기 잘했다. 이제 편안하실거야'

라는 생각으로 계속 스스로를 위로하고만 있다.

어찌 천륜의 정을 가진 엄마가 나를 떠나버린 이 거대한 사건이 몇 일만에 증발할 수가 있겠는가. 시간이 필요할 터이다. 서두르지도 않기로 했다. 애써 잊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록하고 기억하기도 했다. 분명 엄마와의 따뜻한 추억들이 내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나를 지탱해 줄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나갈 아버지와의 추억이야기들과

아직 다 하지 못한 엄마와의 추억이야기들로,

앞에 놓인 삶의 여정에 버팀목이 되어 줄 단단한 뿌리를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 내리게 하고 싶다.






Gina SJ Yi (지나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