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생일상차림

정해진 것에서 조금 벗어나 보자.

by 지나리




딸 아이가 벌써 고등학교 1학년.

그리고 벌써 열 여섯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한국나이로 열일곱이 된 어엿한 숙녀!


3, 4월에 다 모여있는 가족들 생일.

그 때마다 내가 직장인이든, 전업주부든, 생일상을 형식에 맞추어 차려 냈다.

미역국, 나물 몇가지, 생선구이, 잡곡밥을 기본으로 플러스 알파.

하지만 늘 '생일 특별식' 이라 별칭이 붙은 평소보다 고가에 생일자 워너비의 외식을 하게 되면

늘 내가 만든 생일상 메뉴들은 냉장고 안에 칩거하다 분리수거되어 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차려 내는 것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내가 해야하는

의무라 생각하고 늘 똑같은 일을 반복해 왔다.

심지어 내리 세 번씩을...


그래서 올해부터는 조금 달라지기로 했다.





17년도 부터 나는 새벽근무위주의 생활을 해왔고,

그렇기에 늘 아이들 등교는 친정어머니께서 도와주시거나 신랑이 담당해 왔다.

그래도 먹거리 만큼은 내가 준비해 주고 싶어, 늘 핑거푸드 형식의 아침을 준비하고 출근을 해왔다.

이렇게 해두면 아이들도, 신랑도 등교준비를 하며 하나씩 집어 먹기도 하고,

여유있는 날은 자리잡고 앉아 식사를 하기도 하며,

못 먹고 간 날은 하교 후 출출한 배를 채우는 간식이 되기도 했었다.




너무 만족하고 있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할 거라 생각하고 있는 이 방식을 떠올려,

생일상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짜잔~!

올해의 딸아이 아침 생일상이다....

......

그렇다. 처음에는 나도 차려놓고 나서 만가지 생각과 감정을 떠올렸다.

미안함, 허전함, 민망함 등등...

하지만 이내 곧 머릿속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1. 딸아이가 오매불망 원해오던 초밥뷔페, 그것도 1인에 3만원하는 뷔페를 전날 저녁 미리 당겨 다녀왔다.

2. 딸아이가 너무 원하던 생일선물도 전날 조촐한 파티와 함께 전달했다.

3. 늘 가족들 생일이나 기념일마타 귀한 손편지와 함께 정성스런 선물들을 준비해 주는 아이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손편지와 함께 정성스런 선물들을 준비하여, 이 또한 전날 전달했다.


이 모든 생일파티의 과정을 아이가 너무 만족해 하며 기뻐하고, 행복해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네 번째!


4. 아이는 미역국을 제외한 나머지 생일상에 올려지는 반찬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침 등교길에는 절대 먹지 않을 반찬들이다...

그렇기에 아이가 잘 먹는 참치와 씻은묵은지 주먹밥에 미역국, 그리고 최상급 딸기로

심플하기 그지 없지만 엑기스만 담아낸 생일상이 완성되었고,

예상대로 너무 맛있게 잘 먹고 등교를 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엄청 간단한 생일상을 차렸지만,

가족들이 느끼는 만족감은 거의 변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만족스러워 했다.

게다가 나에게 있어는,

생일상을 차리는 일이 더이상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야 하는 '집안 일' 이 아니라 당사자가 좋아하는 것만 간단하게, 기쁜 마음으로 차려내는 뿌듯한 선물같은 일이 된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생활 전반에서 내가 덜어 낼 수 있는 부담이 무엇인지를 찾고,

가족 모두와 함께 평온하게 나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천해 보고 있다.

시작이 어렵지 하나씩 해보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걱정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그런 경험들이 쌓일 수록 내겐 조금씩의 평온들이 쌓이면서 다음 용기가 생겨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물론 빠르고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급히 먹는 밥이 체할 수 있으니 천천히 또 조금씩 가 보고 있다. ^^



p.s. 하루 당긴 딸아이 생일파티에 대한 쿠키레터

뷔페에서 너무 많이 먹은 덕분에 ㅎㅎ 아이스크림케이크도 빵케이크도 절레절레 ^^

그래서 선택한 공주 최애 마카롱세트를 주문하여 쌓아 올린 후 초를 켜고 씬나게 노래 불렀다 ^^


이 대형 선물박스안에는 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애플노트북이 들어있다.

중학교 3년내내 학원이라고는 태권도만 다니면서 스스로 공부하여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하고 싶던 그림그리기, 편집활동들도 열심히 하고 늘 본인의 일은 알아서 잘 해주는 아이가 너무 고마워, 그간 학원비를 모았다는 의미로 꾸준히 해온 그림그리기와 영상편집 실컷 하라고 선물을 준비했다.

거기에,

이제 조금씩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공주를 위해 소소하게 핸드크림, 립밤, 썬크림 등등을 하나씩 포장해

선물박스를 채웠다.

물론 손편지는 화룡점정!!

뛸 듯이 기뻐해준 딸래미,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 ^^



Gina SJ Yi (지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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