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중 랜덤 주제 글쓰기 -2022.05.31-
- '불행'이라는 요리의 레시피를 써보라.
오랜만에 랜덤 주제 글쓰기를 해보는 것 같다. 최근 들어 생긴 글쓰기 의욕 때문에 나의 불행 요리 레시피를 만들 수 있음에 오늘도 감사할 뿐이다. 평소에는 행복이 무엇인지 또는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고민했지, 불행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손에 꼽는 것 같다.
불행不幸 [불행]
1. 명사 행복하지 아니함.
2. 명사 행복하지 아니한 일. 또는 그런 운수.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불행은 행복의 반대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 불행을 알 수 없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가끔씩 돈이 행복이라고 한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것을 이루어지게 만들어주는 돈이 최고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건강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고, 건강한 게 제일 큰 행복이라고 믿는다. 누구는 사랑스러운 애인이 그리고 또 다른 누구한테는 맛집 탐방이 행복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 자기만의 행복을 갖고 있다. 요즘 내가 갖고 있는 행복은 맛있는 음식과 함께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들과 서늘한 바람이 부는 푸른 잔디 공원에 누워 예쁜 구름이 있는 맑은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행복이다. 이른 오늘 아침도 생활관 침대에 누워 기가 지니로 잔나비 노래를 틀면서 창문 방충망 작은 구멍 사이로 보이는 예쁜 하늘을 감상했다. 나 홀로 예쁜 구름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비록 오전 cctv 근무가 있어서 짜증 났음에도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맛있는 음식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쁜 하늘을 보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냥 이대로 누워 시간이 멈춘 채 예쁜 하늘을 두 눈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근무 교대 시간은 점점 가까워지고 결국 예쁜 하늘을 등 진 채 지루한 cctv를 보러 갔다.
행복은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보통의 행복들은 쉽게 대체가 가능한 것 같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미니 선풍기를 갖고 가면 되고, 맛있는 치킨집이 문을 닫았으면 다른 치킨을 시키면 되고, 예쁜 하늘을 보지 못한다면 예쁜 들판을 보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에 반해, 평범하지 않은 행복들은 대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어떤 행복이 대체가 되고 불가능한지는 다르다. 내가 깨달은 대체될 수 없는 행복은 함께하는 사람이다. 각 개인마다 너무나 다른 내면의 세계를 갖고 있기에 비슷한 것을 찾는 시도는 거의 실패에 가깝다. 대체재가 없는 행복은 대체제가 있는 보통의 행복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 대체제가 없는 행복이 가지는 고유한 희소성 때문에 수요가 많을수록 가격은 더욱 치솟는다. 그렇다고 고평가 된 행복이 항상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더 큰 가치를 제공할 뿐이지, 우리가 숨 쉬고 먹고 살아가는 데에 없으면 안 되는 필수재로 분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한테 사람은 대체재가 없는 행복인 동시에 살아가는데 없으면 안 되는 필수재로서 역할한다.
최근 들어 20-30대 탈모 환자가 많아지는 추세라고 언제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이유는 현대 사회가 제공하는 과도한 스트레스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도 고등학생 때부터 공부나 대인관계 혹은 열등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떤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지 몰랐다. 계란을 한꺼번에 10개를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서 말이 안 나오고, 짜증 나서 머리가 뜨거워져 터질 것 같아도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멍 때리기였다. 정신줄을 놓고 아무런 생각 없이 무언가를 쳐다보면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않았지만 간신히 숨을 쉴 정도의 여유가 생기긴 했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룰지 모르니까 고3 입시 시즌에는 친구들의 장난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입을 여는 것보다 다무는 것이 편해지고, 환하게 소리 내면서 웃는 것보다 무표정한 얼굴의 모습이 익숙해졌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가볍게 지나가는 단기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날마다 가면서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쌓여만 갔고 결국 침대 매트리스에 누워서 빨리 눈을 감는 순간 외에 기쁜 순간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요즘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는지도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아가면서 살고 있다. 내가 힘들 때 옆에서 웃겨주고, 고민하고 있을 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면서, 맛있는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내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치킨을 끊을 수는 있어도 사람은 못 끊을 것 같다. 행복이 인생의 전부 인지는 모르지만, 행복하지 않은 인생은 한 번뿐인 인생을 너무 낭비하는 것 같다. 나한테 짜증은 맛있는 치킨집이 영업을 종료하는 것이지만, 불행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장례식에 딱 2번을 가봤다. 한 번은 10년을 같이한 학교 친구 할머니의 장례식이었고, 또 다른 한 번은 친했고 좋아했던 같은 학교 아는 누나의 장례식이었다. 나한테 불행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은 너무나도 크게 다가온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은 최대한 미루고 미뤄 영원히 늦추고 싶은 심정이다.
아직은 이별에 서툴고 익숙하지 않아 언제쯤 나도 어른이 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별에 익숙한 어른이 되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만큼 슬픈 일이 많이 있었다는 또 다른 뜻이니까.
어떻게 불행을 피하는지는 모르겠다. 과연 피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냥, 지금 내가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에 집중하는 거부터 해야겠다.
바꿀 수 없는 것보다 바꿀 수 있는 걸 생각하고,
멀리 있는 불행을 걱정하기보다 가까이 보이는 행복부터 챙기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