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중 랜덤 주제 글쓰기
- 내가 잃어버린 것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지금 듣고 있는 에어 팟 한쪽을 하수구에 떨어트리거나, 코로나에 걸려서 미각을 잃거나, 불의의 사고나 지병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인간은 매일 잃어버린다. 인간은 오늘도 망각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차근차근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망하지 않고 잘만 돌아간다. 잃어버린 에어팟도 다시 사면되고, 미각이 회복될 때까지 격리하면 되고, 비록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각자만의 방법으로 소중한 사람을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다.
근데 왜 잃어버리는 게 죽도로 싫을까. 내가 유독 별나서 그런 건가? 나만 그렇지는 않고 인간이라면 뭐가 되었든 잃어버리면 짜증, 슬픔, 불편함, 공허함 등 을 느끼는 것 같다.
지금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잃어버린 것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지금 보니까 잃어버린다는 것은 1)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잃어버림과 2) 돌아오지 못하는 잃어버림 이 2개로 나뉘는 것 같다.
현재 내가 잃어버린 것은 나 자신인 것 같다. 어린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한테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관심을 쏟지 않으니 아는 게 없고 아는 게 없으니 지금까지 지내온 세월의 시간이 헛되고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게 당연하다.
내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 누군가가 빼앗아 간 거라면 실컷 손가락질하면서 분풀이할 수 있는데 잃어버린 이유가 나한테 있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관심을 가지는 게 별로 위대한 일인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해결하거나, 찾거나, 얻고 싶거나 할 때 제일 처음 가져야 되는 것이 관심이다.
자기 계발의 대가들이 행동과 실천의 중요성을 엄청 강조하지만, 나는 실천보다 관심에 중요성을 두고 싶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흥미 없는 놀이를 계속해서 해나갈 능력이 없다. 처음에 관심을 쏟고 시작해야지 흥미를 가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선생님이 시킨 어려운 숙제는 죽어도 하기 싫은데, 시키지 않은 내가 관심 있는 주제는 몇 시간이 가도 계속하고 싶은 것같이 관심이 무언가를 계속해서 이어가기에 필요한 재료인 것 같다.
말이 딴 데로 샜는데, 어쨌든 나는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이다.
분명히 잃어버린다는 것은 슬프고 짜증 나고 애초에 안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 자체도 좀 잃어버리면 어떠한가.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도 세상은 너무나 잘 돌아간다.
지금까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잃어버린 시간이었지만, 앞으로는 나를 알아갈 시간이 넘치고 넘치지 않았는가. 비록 내가 관심을 다시 안 가진다 하더라도, 이제는 내가 뭘 잃어버렸는지 깨달았으니까 앞으로의 잃어버림은 되돌아올 수 있는 잃어버림이 아닐까.
이미 지나간 시간은 오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디다 통 크게 기부 한셈 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으로 나를 채울 날들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