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살아가나요.
다음 퀘스트에 걸맞게 캐릭터 분석을 해야 마땅한데, 내가 나를 몰라 막혀버렸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몇 번을 지웠다 썼다 반복했지만 결국 발행도 못했다. 운 좋게 한 번에 브런치 작가가 됐을 때만 해도 그 배경에는 전하고 싶은 주제도 내 글의 설계도 명확했는데, 그 공간을 나와버리니 막상 다 잃어버렸다.
소속감이 없으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내 취향과 관심이 주가 되어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취향도 관심사도 딱히 없는 나는 설 자리가 없다. 언제부터 이렇게 노잼인간이 되어버렸지.. 뭘 좋아한다 말할 수 있으려면 그거에 대해 열댓 마디 이상은 가뿐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취향을 내비칠 땐 '취향 존중해 주세요.'라고 멋들어지게 선 그을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할 것만 같은 이상한 경계심이 생겨버린 이후로 나는 무난히 다 좋아하고 크게 관심두지 않는 회색지대에 들어와 버렸다. 그렇게 모든 취향을 존중하며 사람들이랑 잘 섞여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이게 [제 색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증명하는 꼴로 겉돌아 버리다니.
안녕하세요, 무취향 인간입니다.
취향을 찾는 법도 관심사를 찾는 법도 나같이 부끄러움이 흘러넘치는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어딘가에 '좋아요' 한번 누르면 그게 평생 내 취향이 돼야 할 것 만 같아서 쉽사리 누르지도 못하는 이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의 취향은 아주아주 얇게 흐르는 냇물과도 같아서 이게 흐르는지 고여있는 건지 구분조차 어려운데, 이걸 취향이라 말해도 되는 걸까?
좋아하는 것도 취향도 없으니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애써 안 보이는 척 눈을 돌려버린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