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
고대 그리스는 약 500개의 폴리스(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주도국이었으므로 이 두 나라의 병역제도를 소개한다.
스파르타는 전통적인 육군 강국이었다. 인구는 크게 3그룹으로 분류되는데 시민과 페리오이코이 그리고 헬롯이 그것이다. 시민권은 시민에게만 있었고 군사를 담당했다. 페리오이코이는 수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했고 보조 전력이었다. 헬롯은 국가 소유의 농노라 할 수 있는데 농사나 목축, 간단한 옷감 짜는 일을 맡았다. 중무장 보병이 전투에 나갈 때 병사 1명이 7명 정도의 헬롯을 거느렸다. 세 계층의 인구 비율은 1:7:16 정도였다고 한다.
스파르타의 시민들은 시내에 살았으며 대개 1만 명 선이었고 아테네의 인구가 10만에 달했을 때 스파르타의 시민은 3만 정도였다. 스파르타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에포로스라고 부르는 5명의 감독관의 시험을 치렀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이 단계에서 탈락했다. 중증인 경우 낭떠러지 아래로 던졌고 경증인 경우 페리오이코이나 헬롯으로 신분이 떨어졌다. 시험을 통과한 아이는 7살 때까지 어머니가 길렀고 그 후 집단생활이 시작된다. 20세가 되어 성인이 되려면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활과 검, 창과 방패를 지니고 반나체로 산야에 던져졌다. 혼자서 7일 동안 살아남아야 했다. 생일이 겨울철인 경우 이는 매우 혹독한 일이었을 것이다. 헬롯을 상대로 하는 도둑질은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가축을 훔치거나 사냥을 해서 연명했다. 7일째가 되면 헬롯을 습격해서 머리를 베어 기숙사로 가져와야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해 주었다. 어른이 되더라도 집단생활은 지속되었다. 30세가 되어야 비로소 기숙사 바깥에 집을 가질 수 있었고 가정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도 밤이 되면 기숙사에서 자야 했다. 스파르타의 현역은 20세에서 60세까지였다.
스파르타의 시민은 헬롯으로부터 수확물의 절반을 수취했다. 시민 전체가 평등하게 낮은 수준의 생활을 했다. 스파르타는 예로부터 계승된 두 명문 집안에서 한사람씩 두 명의 왕을 두었다. 왕은 정치는 관여하지 않고 군사만 담당했다. 30세 이상 스파르타 시민들의 시민집회에서 장로회의를 선출하는데 60세 이상 시민 28명과 왕 2명 합계 30명으로 구성된다. 에포로스라는 감독관이 1년마다 5명으로 선출되는데 이들이 정치를 담당한다.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신분에 있는 사람은 7세부터 시작하는 집단생활과 20세의 통과의례가 면제되었다. 유일한 예외가 레오니다스 왕이었다. 왕이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을 걱정한 에포로스가 왕비와 이혼하고 다른 아내를 맞으라고 권했다. 왕은 저항했지만 결국 첩을 들이기로 타협했다. 측실은 곧바로 왕자를 낳았다. 그런데 왕비가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아들 쌍둥이까지 더 낳았다. 막내인 레오니다스는 왕위 계승순위가 밀려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집단 생활을 거치고 통과의례까지 치렀다. 왕위를 계승한 것은 이복형이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레오니다스의 첫째 형은 스파르타를 떠나 이태리 반도에서 죽었다. 그리고 쌍둥이 형들마저 세상을 떠났다. 스파르타에는 늘 왕이 둘이어야 했으므로 이복형은 자신의 딸과 결혼할 것을 조건으로 레오니다스에게 왕을 제안해서 레오니다스가 왕이 된 것이다. 제2차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에서 크세르크세스의 20만 대군을 테르모필레 계곡에서 맞아 싸운 레오니다스는 그 때 60세였다.
매년 사람이 바뀌기 때문에 얼굴 없는 5인이라고 부르는 감독관들은 직무를 수행할 때 사리사욕에 휘둘리지 않았다. 60세가 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현역이었고 지휘관일 수도 일개 병사일 수도 있었다. 고심해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복잡함과 책임감에서 동질적이라 할 수는 없었다. 스파르타의 정치적 결단은 항상 늦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일단 전쟁에 나가면 그리스 최강이었다.
스파르타는 리쿠르고스 한 사람에 의해 개혁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신앙화된채 지속된 반면 아테네는 다섯 사람의 릴레이 개혁이 이루어졌다. 솔론, 페이시스트라토스, 클레이스테네스, 테미스토클레스 그리고 페리클레스가 그들이다. 테미스토클레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4명은 아테네의 명문가 출신들이다. 솔론이 먼저 개혁의 첫 발을 떼었다. 임기가 1년이며 매년 9명이 선출되는 아르콘에 솔론은 44세 나이에 처음 선출되었다. 솔론은 혈통은 좋았자만 경제적으로는 별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빌려준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해외 각지를 돌면서 비즈니스를 했다. 상술이 있었는지 귀국할 때는 재산이 상당히 있었다. 솔론의 개혁과제는 부채를 갚지 못한 사람이 자기 신체로 변제하는 기존의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위험이 따르기 마련인데 자신과 가족이 노예 신세가 될 수 있다면 모험 투자가 이루어질 수 없다. 아테네는 해상 무역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솔론의 아버지가 빌려준 돈을 노예 형태로 회수했다면 가난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솔론은 아버지로부터 돈은 물려받지 않았지만 온정적인 태도를 물려 받았다. 이미 존재하는 부채를 탕감하기 위해 드라크마의 평가절하도 단행했다. 솔론의 제안은 평민 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찬성도 받아냈다. 부채를 전부 못받는 것보다는 평가절하된 일부만이라도 회수하는 것이 귀족들에게도 이득이었다. 3년 후 다시 아르콘에 선출된 솔론은 신분제를 개혁하였다. 출신 가계나 사회적 지위, 명성과는 달리 오직 재산을 기준으로 시민을 4계급으로 나누었다. 제1계급과 제2계급은 기병을 구성했다. 제3계급은 중부장보병, 제4계급은 경무장보병을 담당했다. 솔론은 최초로 국세조사를 했는데 그 당시 아테네의 기병은 1000명 정도, 중무장보병은 1만명 정도였다. 3계급 시민이 1,2계급 시민보다 10배 정도였다는 의미다.
아테네에서는 태어난 아이를 감별하지 않았다. 7세가 되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읽기, 쓰기, 산수 외에 시문 낭독이나 암송이 추가되었다. 12세가 되면 체육훈련장을 나가는데 이런 시설은 개인이 운영했다. 18세가 되면 성인으로 인정받았지만 스파르타 같은 통과의례는 없었다. 다만 관청에 가서 병사로서 장부에 기입했다. 그 후 2년에 걸친 인턴 기간에는 방패와 창을 다루는 개인 훈련과 무리지어 하는 훈련을 받았고 아테네 곳곳에 있는 군사기지에 가서 경비를 섰다. 2년에 걸친 인턴이 지나야 정규병사가 될 수 있었다. 현역 복무기간은 20세부터 50세까지였다. 인턴이나 예비역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전쟁에 소집되지 않았다. 훈련이 끝나면 집에 창과 방패를 가지고 돌아갔다. 스파르타와 달리 아테네의 병사들은 평범한 시민생활을 했다. 스파르타든 아테네든 당시 고대 그리스의 시민에 여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스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