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을 쓰는 이유

by 김태완

나는 책을 참 좋아했다. 글을 익히고 나서 닥치는대로 책을 읽어댔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므로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이 너덜너덜해지면 아버지가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엮어야 했다(국민학교 2학년 때 비이글호 항해기가 그 책이었다).


서울 와서 친구들 집을 가보니 오! 책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친구 집에가서 그 집 책들을 다읽으면 다른 친구 집에 가서 읽는 짓을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했다.


대학 1학년 때 책값으로 100만원 넘게 썼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책값이 평균 1만원 정도였으니 사흘에 한 권 꼴로 읽어댄 것이다.


지금은 어지간해서는 책을 사지 않는다. 책을 사지 않기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물론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책값도 많이 올랐는데 마구 사댈 수가 없다.

둘째, 책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 4면을 책으로 천장까지 쌓아본들 공간은 한계가 뚜렷하다.

셋째, 이사 몆 번 하면서 무수한 책들을 버려야했다. 버릴 책을 골라야하는 그 짓은 자주 할 짓이 못된다.

넷째, 어느 인류학 책을 통해 깨달은 건데 책에 밑줄을 긋거나 책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마치 그런 행위를 통해 지식을 소유하고 내 것이 되었노라 주술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다섯째, 도서관이 옛날보다 풍성해졌다. 어지간한 책은 다 구할 수 있고 희망도서 신청을 하면 한두달 뒤에 연락이 온다. 그래서 더 이상 책은 사지 않지만 독서량은 더 많아졌다. 반납기일에 보지도 않고 반납하기는 미안하니까 어쨌든 보게되는 효과도 있다.


지금도 아쉽게 여기는 것이지만 내게 독서를 지도해 줄 형이나 누나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독서도 지나치게 문,사,철에 편향되었다. 이공계 지식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따라잡으려 애쓰지만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이 안타깝다.


나이 들어 책을 읽으면 금방 가물가물해진다. 특히 잘 모르는 분야를 읽으면 건성건성 건너뛰는 느낌이어서 영 마뜩치 않다. 그래서 읽은 내용을 간추리는 독후감을 쓰기로 했다. 독후감을 쓰면서 책을 이리저리 다시 훑으니 한 번 더 읽는 효과도 난다. 다만, 독후감 쓰는 일이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방대한 분량을 다 요약하는 스타일도 벅차고 무엇보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남으면 독후감으로 쓰는 것도 어렵다. 시간도 의외로 많이 걸린다. 그래도 써 두었던 독후감을 나중에 다시 읽으면 역시 독후감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내가 얻은 인상, 새로 알게된 내용, 공감했던 부분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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