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똥이 거기에 있는지 몰랐어요...
몇 년 전 할머니 돌아가신 후부터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어
추석과 설 연휴에는 항상 가족여행을 다녀온다.
일 년에 두 번씩 명절마다 가족여행을 다니니 전국 거의 모든 곳을 가본 듯하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는 주로 혼자 여행을 다녔었는데
가족여행을 다니면서 그전에 가보지 못한 곳도 다녀보니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우리 땅이 넓지는 않아도 깊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 설 연휴에는 5일간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동생이 항공편과 숙박을 예약하고 동선을 짜는 등
모든 준비를 다해서 나는 여행 중에 운전과 식사 계산을 하였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매 명절마다 제사 준비를 하면서
가족 간 얼굴 붉히는 일도 있었는데 이제 그럴 일이 없으니
마음 한 편으로는 후련하지만
그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은 화도 난다.
명절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제사를 지내러 모인 일가친척 앞에서 점잖은 척, 모든 준비를 본인이 한 척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할머니 돌아가신 후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한 건 잘한 일이다.
취업을 하기 전 명절마다 제사를 준비하는 건 항상 엄마의 몫이었다.
시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명절에 모인 친척들이 돌아갈 때 준비한 음식을 챙겨 보내고
항상 엄마의 명절은 즐거움보다는 부담과 힘듦의 연속이었다.
어릴 적에는 명절이 오는 것을 기다렸지만
철이 들고나서부터는 명절, 특히 일가친척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에 반감이 들었다.
제사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가 차려놓은 명절음식을 먹으며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을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엄마는 명절 내내 쉴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명절이 끝나고 나서 빈말이라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던 아버지를 보며
대체 이 명절에 지내는 제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과 화가 나기도 했다.
명절에 가족들이 스트레스받는 걸 매번 보면서 본인이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미명아래
형제들에게 이제 그만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얘기도 못하는, 아니 안 하는 아버지를 보며
본인의 가족보다는 체면과 겉치레가 중요한 분이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 장례를 치르며 고모들이 이제는 제사를 그만 지내자라는 얘기를 꺼냈고
그제야 그러자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음과 허탈함을 느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음 해 설 연휴부터 명절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명절 연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기도 그렇고
가족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계획을 세우고 다녀왔지만
이제는 매년 연례행사가 되다 보니 명절에 어디를 갈까 생각하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녀들이 모시고 다니는 여행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제는 매번 명절 전마다 엄마에게 이번에는 어디를 가는지 물어보는 아버지를 보며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그냥 원래 저랬던 분이니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말자고 생각해서인지
예전보다는 짜증 나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화가 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그저 좋게 다녀오자는 마음을 먹을 수밖에.
동생도 매번 명절 때마다 여행을 다녀오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만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기보다 모시고 다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명절전마다 어디를 갈지 같이 계획을 세운다.
이번 설 연휴에 제주도를 다니며 적당한 거리를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두 분을 보며
이제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설 연휴 여행을 계획하며
4월 하순에 벚꽃 보러 일본 여행도 같이 계획하고 항공편과 숙박을 예약해 놓았다.
4월 여행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동생 말처럼 그래도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는 것이 지금의 마음이다.
최대한 많이 걷지 않도록 동선을 계획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