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생동성 실험)

2025/03/18 화요일

by 임성빈


오전 6시, 순백의 병실, 불이 켜진다. 적은 가짓수로 칠해진 탓인지 유난히 밝고 눈이 부시다. 이런 시간에 일어나 본 지 꽤 되었지만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단한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압박감 때문일까, 인간이 무서우리만치 적응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마음 한쪽을 도려낸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내 이야기만은 아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 또한 단체생활이다. 최소로 부여된 나의 공간에는 침대와 사물함이 있다. 부여되었다곤 하지만 이는 내 것이 아니다. 여기 머무는 동안 사용할 수 있게 허락된 것이다. 나는 이를 사용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내 선택이지만 단체에 속한 이들 중 그런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비효율적인 행동이고 이 장소와 맞지 않는 행동이다.

미시적으로 보면 개개인의 사정이 모두 다르다. 이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세상사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모두가 나와 같은 입장으로 누워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비경제적이고 불필요하다. 여기서 우리에게 부여한 것은 공간과 작은 사물함뿐만이 아니다. R205는 내게 부여된 또 다른 나의 이름이다. 과정의 성공적인 결말엔 이것이 본래 이름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것만이 남기 때문이다. 다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은 마지막 무언가를 잃기 싫은 내 바람이 부른 구분이다. R205는 일련번호가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입에서 나온다. 어쩌면 최근 입 밖으로 더 많이 나온 것은 이름보다 일련번호일지도 모른다. 옆 사람과 나는 어디서부터 짚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다르다. 하지만 번호로 보았을 때 차이는 정확히 1이다. 나는 R204보단 크고 R206보다 작은 R205일뿐이다.

오전 8시 4분, 의사가 내 번호를 묻는다. 그리곤 기억해 두라고 일러준다. 어느 팔에 주사를 꽂을지 묻는다. 대부분 왼손에 받으니 나 또한 왼손을 걷는다. 주먹을 쥐고 지혈대를 묶고 알코올 솜으로 일부를 닦고 채취통을 끼고 주먹을 편다.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내가 만든 나의 혈액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묘하다. 영화처럼 울컥 뿜어져 나오기보단 힘없이 병을 때리고 있다. 내 시선은 마치 남의 일인 듯 그저 내려다볼 뿐이다. 저항이나 의문은 찾아볼 수 없으며 어떠한 생각을 짐짓 하더라도 이미 혈액은 내 곁을 떠나고 난 뒤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 혈액은 이제 내 소유를 벗어나 다른 이에게 인도된다. 4ml의 혈액이 몸에서 나왔지만 몸의 변화는 없다. 늦은 밤 자고 있을 때 몰래 피를 뽑아가도 나는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 피가 오랜 시간 서서히 뽑혀나간다면 편안한 죽음에 다다를 수도 있겠다.

오전 9시 23분, 의사가 옆 사람을 깨운다. 앞으로 5시간 동안은 잠들면 안 된다. 다리를 뻗어 몸을 L자로 만들어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삼킨 약이 전신에 돌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과정과 대우는 전혀 비인간적이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수긍한 제도와 계약에 의해 마땅히 해야 할 과업이다. 그런 점에 빗댄다면 지시한 의사와 이에 응한 옆 사람, 즉 R204번은 그들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각자가 문명인으로서 부여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선가 미세한 비참함이 따르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오전 10시 3분, 또다시 피가 나간다. 한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행위는 앉는 행위에 부담을 가한다. 병실의 내 침대는 첫 느낌과는 많이 달라졌다. 첫날 대면한 침대는 비좁아 보이면서도 막상 누워보니 선뜻 일어나기 힘들었다. 편하기 때문이 아닌 자체의 구조와 주변 환경 탓이다. 침대와 사물함들이 다닥다닥 나열되어 있는 탓에 눕거나 일어날 때 특유의 주의가 필요하다. 청결을 위해 준비된 침대보는 그것에만 특화되어 침대 위 움직임을 제한한다.

오후 6시 5분, 13번째 채혈이다. 이제는 구성원 모두가 능숙하게 팔과 피를 내준다. 지혈대를 묶기 쉽게 팔을 살짝 들며, 채혈통을 끼기 전후로 주먹을 쥐었다 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면서 할 수 있다. 오히려 채혈하는 간호사의 표정과 행동엔 따분함과 지루함이 묻어있다. 우리는 기계같이 행동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의료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반복적인 행동 자체는 난이도를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쉬우며 우리는 얌전히 따를 것을 약속했다. 이것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한 줌의 무언가마저 혈액을 타고 빠져나갈 것 같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이를 그만둘 수 있음에도 어떻게 완벽히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만둔다고 하여 향후 어떠한 불이익도 없으며 아쉬울 것은 오히려 병원에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압도해 우리를 이곳에 머물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 날 오전 8시 10분, 마지막 채혈을 뒤로하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누구 하나 여지없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언제든 나갈 수 있을 채비를 한다. 나는 내가 일구어낸 나의 공간으로 이동해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우길 원했다.

우리가 목표로 한 것은 생동성 실험의 절차적 성공이다. 우리에게 실험된 약이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실험이 적당히 힘들고 진전되어 원만히 퇴원하길 바랐다. 그리고 그 뒤 이에 따른 적당한 보상이 주어져 지갑을 채웠으면 할 뿐이다. 누군가는 인간에 대한 생체실험이며 제도적인 장치가 부족하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6개월마다 참여할 수 있는 고수익의 생체실험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마저도 나에게 흥미를 주지 못한다. 나는 나를 그렇게 사용하기로 정했으며 이는 무엇보다도 타당한 근거가 되어준다. 이에 대한 반발이 강해질수록 참여자들은 자신을 포기하는 자기 방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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