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크리스마스

by 임성빈

올해 크리스마스는 다낭에서 보내게 됐다. 오랫동안 꿈 꿔온 더운 크리스마스를 드디어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왜 더운 크리스마스를 쫓아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땀이 많아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쩌다 그 좋은 날에 땀을 흘리러 돈을 쓰게 됐을까?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어릴 때 영어교재에서 ‘크리스마스 섬’을 봤다. 거긴 홍게가 유명한데 한 번 쯤은 다들 봤을 수 있다. 홍게들이 무리지어 도로를 지나는 모습, 해변을 가득 메우는 모습 등이 어릴 땐 꽤 귀여웠다. 홍게들은 산란기에 몇몇 도로를 점거한다. 주민들은 남은 도로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이동한다. 이때 홍게들이 가득한 길을 지나게 되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빈 공간을 찾아 밟아간다. 홍게들은 인간이 있든 말든 그저 지나가기만 한다.

어릴 땐 그 모습에서 동화를 보는 듯한 큰 짜릿함을 느꼈다. 도로를 가득 메운 홍게들에 들떴고 그 안에서 일상을 지내는 사람들이 쿨하게 느껴졌다. 지금으로 비교하면 허리까지 찬 강우에도 출근하는 90년대를 보는 듯한게 아니었을까. 쿨함이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냥 행동하는 모습에서 나왔다. 크리스마스섬은 발견된 날이 크리스마스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이 떠올리는 일반적인 크리스마스를 즐기긴 어렵다. 남반구에 위치해 눈 내리는 겨울이 없다. 이것조차도 쿨했다. 그때쯤 더운 크리스마스를 꿈꿨다.

대학생 때 빈지노의 'we are going to'를 듣다가 방콕에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사실 방콕이 태국인지 대만인지조차 알 지 못했다. 그냥 노래에 이끌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충동적으로 떠나는 모습이 멋있었고 방콕에 전염됐다. 한동안 생각날 때마다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비행기를 예약하려면 시기가 중요하다. 더운 나라이니 추울 때 가면 재밌지 않을까해서 크리스마스에 가기로 했다. 아마 어릴 때 본 크리스마스 섬에 대한 기억이 조금은 영향을 줬다고 본다. 그러나 비행이 왕복 70만원대라 고이 접어두었다.

최근에 서울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작년 이맘 때 베트남을 다녀왔다. 들어보니 이전에도 베트남만 몇 번을 갔었단다. 그의 여행기를 듣다보니 접어두었던 꿈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지금만큼 시간이 남는 때가 없어 시기도 적절했다. 심지어 올해도 그 친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베트남을 간다. 결정적으로 베트남은 물가가 상당히 저렴했다. 좋은 숙소와 먹거리를 즐기고 매일 마사지를 받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때 방콕은 머리에서 지워졌다. 그렇게 상당히 물질적인 이유로 ‘다낭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가 완성되었다.

아직 여권을 받기도 전이지만 이미 마음은 다낭에 있는 기분이다. 20대 초반에 해외여행을 두 번 다녀왔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고 아리다. 이번 다낭도 그렇게 사무치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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