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은 아무래도 자기 자랑이 좋겠죠?
간간이 타사(네X버) 블로그에 글은 쓰긴 했지만, 이렇게 형식이 자유로운 장문의 글을 쓰는 것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최근 '브런치 스토리'를 친구에게서 전해 듣고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곳이 있었지'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원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 풀어보려고 하는 이야기의 자그마한 스포일러지만,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게 됐다. 이 공간에 얼마나 자주, 규칙적으로 글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시작한 거 일단 한번 해보겠다.
첫 글 분량을 얼마나 뽑아야 할지 몰라서 바로 본론으로 가보겠다. 현재 나의 MBTI는 ISFP다. 무려 돈을 주고 해야 하는 기관에서 받은 결과다. 하지만 어릴 적 나는 E였다고 한다. 내 성격이 이렇게 정반대가 돼버린 이유를 굳이 묻는다면, 나는 책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지금으로부터 대략 17년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아직 기억난다. 나름 나의 첫 최애 책이자 N 회차 정독을 했던 책이다. 바로 홍종의 작가님이 쓰신 [초록 말 벼리]라는 책이다. 경주마의 삶을 다룬 어린이 동화책인데 다 커버린 지금도 그 책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참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다. 또한 '책'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흥미를 느끼게 해줬던 작품이다.
책을 좋아하게 되고 '책'을 이루는 '글'을 배우기 위해 논술 학원에 다녔다. 아마 엄마가 이 말을 들으면 전력으로 반박할 수 있지만, 난 정말 논술 학원을 다니면서 즐거웠다. 물론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가지 않고 놀고 싶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것이다. 이후 나는 '독서 논술'을 그만두고 '신문 논술'로 업종을 변경하게 됐다.
왜 바꿨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신문 논술 공부방을 처음 가던 그날, 내 인생이 바뀐 것은 확실하다. 신문은 딱딱하다. 기사가 딱딱하니 당연하다. 딱딱한줄 만 알았던 껍질을 한꺼풀씩 벗겨가다 보면 정형화된 문장 속 기사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하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내가 증인이 될 수 있다. 내가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신문 논술 선생님도 참 좋은 분이셨다. 언제나 활기차게 맞아주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런가, 선생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없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때 즈음, 학원을 그만뒀다. 하루종일 학교에 있어야하고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는 날에는 주요 과목을 배우러 학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학원을 그만두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인지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이렇게 신문과 기사 형식의 글 이외에도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이 있다. 바로 축구다. 하는 것도 좋아했고 보는 것도 좋아했다. 내가 처음 축구를 접한 것은 2007/2008시즌의 대구FC 경기였다. 내가 대구에 살아서 가장 접하기 쉬웠던 점도 있고 당시 2부 리그에 머물던 대구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무료로 표를 나눠줬기 때문이다.
다들 치킨과 피자를 먹으러 가는 나들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때, 내 눈길은 푸른 잔디밭을 향했다. 22명의 선수들은 서로 몸을 부딪히며 뜨거운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그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태양의 아들' 이근호 선수였다. 지난 시즌 은퇴를 선언했을 때 진심으로 울컥했다.
여하튼 내가 좋아하는 축구와 신문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결국 신문 논술을 배운 지 1년 후인 중학교 1학년, 나는 스포츠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하면서 돈을 벌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에 너무 설렜다. 하지만 현실은 순탄치 않았다.
난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언제나 중간을 유지했다. 그냥 중간도 아니고 중간과 중상의 중간 지점이었다. 참 애매했다. 못하는 편은 아닌데 그렇다고 잘한다고 할 수 없는 포지션이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인문계만 갈 수 있으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가 진짜 난관이었다. 입학 전, 입학시험을 치고 공통반, 문과 집중반, 이과 집중반을 고를 수 있었다. 난 문과 집중반을 가고 싶었지만, 공부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거의 포기했는데 덜컥 합격을 하고 말았다. 농담 없이 난 고등학교에서 되는 놈이었구나 싶었다.
역시나 내 착각이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내 성적은 애매한 그 위치 그대로였다. 그러나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어느 학교에나 동아리 시스템은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있었고 나는 내가 원하고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1학년 때는 책쓰기 동아리에 가입해서 아주 짧은 초단편 소설도 써봤다. 2학년이 돼서는 학교 신문 동아리에 가입해 교우지에 실릴 기사를 쓰는 등 내 포트폴리오를 착실히 쌓았다.
그렇게 대학교에 무사히 입학했다. 내가 가고 싶었던 신문방송학과(입학 전에 미디어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뀌었지만 근본은 신방과다.)에 무사히 진학하며 잘 풀린다고 생각하던 찰나 문득 '근데 이렇게 살아서 취업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소위 말해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다른 길을 찾아본다고 반년간 직업훈련으로 웹 디자인과 코딩도 배우고 정 안되면 공장에라도 취직할까도 고민했다. 아예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새로 도전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언제나 기회는 우연히 찾아오는 법. 때는 4학년 2학기, 졸업식을 단 4달 앞둔 10월이었다. 학과 공지로 스포츠 기자가 하고 싶은 인원 5명을 모집한다고 올라왔다. 옆에 있던 친구와 바로 달려가서 신청했고 무사히 5명 안에 들었다. 그중 2명을 뽑는다고 했는데 나와 같이 신청했던 친구가 뽑혔다.
그리고 난 지금 서울 자취방에 앉아서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다. 금요일이 되면 또 광화문으로 출근해야 한다. 출근하면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축구를 소재로 삼아 기사를 써내야 한다.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내가 14살 때 처음 꿨던 꿈을 25살에 기적적으로 이뤘다. 난 아직까지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신문에 흥미가 없었거나 스포츠에 흥미가 없었다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취준생의 신분을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끄적일 일상 글을 위해 길고 긴 서론을 풀어내봤다. 솔직히 난 글솜씨도 없고 꾸밀 줄도 모른다. 일하면서 글로 인한 스트레스도 매일 받는다. 게다가 요즘은 책도 안 읽고 맨날 집에서 게임하고 유튜브 보고 애니메이션만 봐서 어휘력 수준도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오랜만에 자유롭게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즐겁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 글 쓰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