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어 글쓰기 9

숲, 수풀

by 인간아

시댁이었던 춘천에는 남편의 본관인 청산 정씨의 선산이 있다. 시집을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시아버지는 새로운 식구인 나를 데리고 도시락을 싸게 하신 후, 남편과 함께 조상의 묘소에 절을 드리도록 하셨다.

그 때 오르게 된 선산길은 앞에 춘천호가 한가득 내려다보이는 배산임수의 작은 산으로, 서울 도시에서 태어난 나는 일찍이 가져보지도, 누려보지도 못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남편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철마다 다른 경춘국도의 모습을 좋아했기에 시댁 가는 길이 싫지 않았다. 힘들게 선산에 올라와서 땀을 식히고, 청명한 가을 하늘과 함께 멀리 보이는 중도와 공지천의 다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나중에 나도 선산에 묻혀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매년 그 곳에서 우리는 벌초를 하고, 제를 지냈고, 잠시 앉아 쉴 때마다 간혹 생각했다. 올라오는 길이 힘들어 자주야 못 오겠지만, 딸아이가 머리도 식힐겸 이 곳에 잠시 소풍하러 오게 하고 싶다고.

선산을 오르다가 힘이 들면, 숨을 고르면서 뒤를 돌아 춘천호를 내려다보곤 했다. 메밀밭이 있는 딱 이 지점에 집을 하나 지어 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 지점에 누군가 집을 짓고 포장도로를 집앞까지 내었다. 덕분에 우리도 절반이 못되는 지점까지는 차로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난 후, 남편이 선산에 나무를 심을건데 무슨 나무가 좋겠냐고 내게 물었다. 난 망설이지 않고 자작나무를 심어 달라고 했다. 그 자작나무숲을 즐기려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란 것도 알았지만, 후대에 딸아이가 손주와 함께 이 곳에 올라와 자작나무숲을 즐겨도 좋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심은지 7년이 훌쩍 지난 것 같은데 가보면 가느다란 작대기만 찔러놓은 것 같던 숲이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다.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들은 모두 1970년 초에 심어 수령이 60년이 넘은 나무들이다. 그 사이를 누비면서 자작나무숲을 한참 즐기기엔 다소 수밀의 규모가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시댁 선산은 원대리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겠지만, 원대리보다야 딸에겐 더 친밀할 것이다. 우리가 그 곳에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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