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실수
나태와 방만이 주는 편안함이, 실수에 대한 관용까지 허락하지는 않는다. 특히 내 연배에는. 따라서 점점 잦아지거나 놓쳐 생기는 실수의 틈새를 막으려면 귀찮고 성가셔도 다시 살펴보고, 내 나름의 단도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와중에도 늙은 두뇌는 쓸 내용의 단서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글은 분량과 내용의 빈곤함을 띤 채 방향성을 잃고 치닫는다. 메모라는 나름의 단도리도 없이 휴대폰으로 콕콕 눌러 쓰는, 글쓰는 방식의 한계가 만드는 실수이다.
아주 오래 전 '앗 나의 실수'라는 TV프로그램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그것은 가벼운 실수들이 만들어내는 공감과 위로의 전국적인 코미디 대잔치였다. 그러나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 실수가 빚어낸 인재와 비극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실수는 시간을 되돌려 담고 싶은 끔찍한 재앙이 된다.
숨을 쉬면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코미디와 비극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해야하는 힘든 순간이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연대와 협력은 부족한 우리를 안심시키고, 혼자보다 강해지도록 이끌며, 불완전한 인간이 책임을 분산해 지도록 하는 생존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이걸 이기적인 이유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각자도생과 능력주의가 우리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쉬운 세상이다. 나 또한 심드렁과 무심함이 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인 것처럼 장착하고 지낼 때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실수나 실패를 종종 겪고 살 수 밖에 없다면, 그 실수가 혼자가 아닌 함께 겪어야 할 관계에 놓여 있다면, 너무 치명적이지 않은 실수여서 우리를 긴장시키는 정도의 의미로 끝나는 그런 실수였으면 좋겠다. 연이은 실수가 위축감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게,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라고 특툭 털며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실수말이다. 그래서 이 희망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오늘 나는 기본적인 성실과 무리하지 않은 긴장으로 마음의 끈을 다시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