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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시어머니는 불리하면 쓰러지신다?

by 이봄

결혼하고 10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우리 집은 사랑이 가득한 집이라 그런지, 다들 정신력이 약해서인지 시어머님이 약한 감기라도 걸리면 온 집안이 난리가 난다. 그렇지 않아도 늘 쓰러질 것처럼 다니시는 그녀는 감기 기운이 조금이라도 보일라 치면 몸 져 드러눕고 또 ‘나를 더 이상 믿지 말아라.’를 반복하며 울먹이신다.


“콜록콜록… 에미야, 내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한다… 이젠 나를 믿지 말아라.”

“어머니, 안 믿어요. 약이나 드세요.”

“에미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내가 이리 아픈데…”

“어머니가 날 믿지 말라고 하셔서, 전 안 믿는다고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그리고 어차피 어머니가 아프시나, 안 아프시나 뭐 집안 살림이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어머니가 밥을 하세요? 아이들을 돌봐 주세요? 아이들과 육아도우미 이모님을 관리한다고 해도 ‘눈’으로만 보고 계시는 거잖아요? ‘눈’으로 관리하는 것도 힘드시면 그것도 하지 마세요.”

“아니? 뭬야? 아이고… 아아악…"


한참을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시다 냅다 쓰러지신다.

아버지와 남편은 달려와 ‘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라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아이들은 어른들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괜스레 울상이다.


어머니가 독감도 아닌 약한 감기 걸렸을 때 우리 집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마치 O.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의 사경을 헤매는 환자 여주인공 ‘존 시’ 인양 ‘일어났다, 쓰러졌다’를 반복하신다.

응급실에서 혈압만 조금 높다고 당장 퇴원하라고 해서 도착 1시간도 안 돼서 쫓겨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택시를 부르고 허탈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신다.

초반에는 남편이 응급실에 따라가서 상태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응급실행이 잦아지자, 남편은 “아버지, 119에 전화해서 먼저 가 계세요, 일 끝나고 바로 갈게요,”라고 말한다. 병원에서 대부분 한두 시간 이내에 귀가 조치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병원에 들르지 않고 집으로 퇴근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응급실행이 한 달에 1,2회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싸운 후에도 시어머니는 잘 쓰러지신다. 시아버지는 '네 엄마가 나와 싸우다 병세가 악화되어 쓰러진 것’이라고 정말 놀라서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하신다. 어쩌란 말인가? 시부모님이 싸우고 난 뒤에 중재를 맡아 달라는 건지 아니면 시부 당신은 이쯤에서 빠질 테니 상처받은 시모를 보살펴 달라는 건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관계이지만 인간적으로 두 분, 부부관계에 관심이 전혀 없으며 내 코가 석 자인데 칠십 평생 함께 해 온 두 분에 대해 내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시어머니가 불리해지자 쓰러지는 것을 택한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에 대항하는 아랍 무장조직의 자살 테러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강한 상대를 대적할 때 사용하시는 전략이 ‘실신’이다. 그렇게 빈번하게 병원 신세를 지면 생활비가 지출되어 경제 공동체인 우리가 더 가난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그 지점에서 어머니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머니가 강자의 세상에서 생존이 걸린 문제를 만날 때 들고 나오는 '전략'이 있다. 바로 당신을 ‘약한 자’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구하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너무 많이 병원에 가시니 ‘아, 이번 달 돈이 꽤 들어가겠네’라고 생각하며 짜증이 날 뿐이다.


대기업 회장님과 사모님의 생존 전략 안에 ‘불리한 상황에서는 병원 입원 행!’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서민인 우리 가정은 어머님의 잦은 병원 행 때문에 경제적 파산의 늪으로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집 자가용 같았던 엠블란스여! 이젠 이별을 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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