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거울
이번 시리즈는 연애이야기가 아닌 투사와 그림자라는 개념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려 한다.
왜냐하면 투사와 그림자 개념을 확실히 알게 되면 나의 문제와 더불어 연애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매우 도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관계를 맺지만, 그 타인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보지는 않는다.
우리는 타인에게 내 안의 무의식을 덧칠한다.
이 과정을 분석심리학에서는 '투사(projection)'라 부른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기 어려운 내 모습이 있다.
그건 억압된 욕망일 수도 있고, 부끄러운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런 부정적인 측면은 ‘내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무의식은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드러낸다.
그 방법이 바로 투사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쟤는 너무 이기적이야.'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게으를까.'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모습은 내 안에도 존재한다.
내가 애써 외면했거나, 받아들이지 못했던 내 그림자가 상대에게 투영된 것이다.
연애 문제와 남성심리, 여성심리에 대해 알고 싶어 내 글을 읽는 일반 독자들에게 프로이트와 융은 낯선 인물들이지만 프로이트가 만든 정신분석학과, 정신분석학에 뿌리를 두고 독자적인 이론으로 발전시킨 칼융의 분석심리학은 인간의 무의식과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데 매우 유용한 학문이고 내가 쓰는 모든 글도 분석심리학을 바탕으로 쓰므로 가볍게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먼저, 프로이트에게 투사는 방어기제였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동을 억압하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융은 조금 다르게 보았다.
그는 투사를 “무의식의 거울”이라 했다.
내가 아직 충분히 의식하지 못한 내 존재의 일부가, 타인을 통해 나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즉, 내가 싫어하는 타인의 모습 속에서 사실은 내 그림자를, 내가 매혹되는 타인의 모습 속에서 사실은 내 가능성을 보고 있는 셈이다.
사실 연애문제나 나의 문제를 파악할 때 투사로 현상을 설명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일반 독자들에게 '투사'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하지만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투사는 단지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투사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연애에서 상대에게 강렬히 끌릴 때, 그건 종종 ‘이상화된 투사’ 때문이다.
그 이상화된 투사는 부정적으로 보면 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 안에 잠재된 가능성이나 갈망을 상대를 통해 발견하기도 한다.(내가 알지 못한 나의 결핍과 욕구를 파악하게 된다.)
투사를 안다는 건 곧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가 싫어하는 타인의 모습은 내 안의 그림자일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타인의 모습은 내 안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끝없이 남을 탓하거나, 끝없이 환상에 빠졌다가 실망하게 된다.
하지만 투사의 작동을 알게 되면 관계는 조금 더 깊어진다.
타인 속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곧장 덮어씌우는 대신,
'그건 내 안의 무엇을 보여주는 걸까?' 하고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투사를 통해 내 내면을 볼 수 있다.
투사를 이해한다는 건, 타인을 통해 나를 더 깊이 만나는 일이다.
그리고 나를 깊이 이해할수록, 타인과도 더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