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는 선하다
우리는 정의롭다
우리는 희생자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빠진 것이 있다.
우리 안에도 있는 폭력성, 욕망, 이기심은 보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그것을 모두 '그들'에게 떠넘긴다.
유대인을 희생양 삼았던 나치
이단을 몰아붙였던 중세의 교회
현대 사회에서 특정 민족이나 젠더를 향한 혐오.
이 모든 것은 집단이 자기 그림자를 외부에 투사한 사례다.
집단적 투사는 언제나 '악마화'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적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비인간적 존재, 악마 같은 존재로 격하된다.
일단, 그들의 존재가 악마로 규정되고 나면 어떤 폭력도 정당화된다.
'저들은 인간 이하이니 제거해야 한다.'
이 말은 결국 '우리의 그림자를 우리가 감당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집단 그림자는 살아 있다.
정치적 분열 속에서 상대 진영을 ‘악’으로 낙인찍는 현상,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특정 집단을 조롱하며 분노를 투사하는 행위,
국제적 갈등 속에서 상대 국가를 ‘문명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는 담론.
이런 집단적 투사는 우리 안에 있는 불안, 무능, 공포를 직면하지 못한 결과다.
집단은 자기 내면의 문제를 바라보기보다 더 쉬운 길(외부의 적을 만드는 길)을 택한다.
개인이 그림자를 인정하지 못하면 삶이 왜곡되듯, 집단이 그림자를 인정하지 못하면 사회가 왜곡된다.
그림자를 외부로만 내던진 사회는 끝없이 희생양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진짜 적은 밖에 있지 않다.
그림자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