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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철 Apr 13. 2023

장 폴 사르트르의  "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읽고 ...


“말”은 사르트르가 자서전의 형태를 빌어 자신의 종교관, 세계관, 실존주의 철학을 적나라하게 표출한 책이다.

1905년생인 사르트르는 이 책으로 1964년 노벨 문학상에 지목되지만, 그는 수상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이유를 먼저 파악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되며, 당시 사르트르의 인터뷰 내용 등을 찾아본 결과, 그는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하여 제도권에 편입되는 삶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여 진다. 즉,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하여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을 기틀로, 정해진 본질이 없이 우선적으로 실존하기에 인간은 삶을 그때그때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채워나간다고 본다. 때문에 그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권력이든 종교든 문화든 간에 모든 종류의 권위를 부정하고자 했다. 노벨상의 권위마저도 그에겐 그런 의미였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외부의 가치판단에 의해 만들어진 ‘나’가 아닌 진정한 사르트르, 자기 자신으로서 자신만의 주체성과 창조성을 고민하는 작가로 끝까지 남는 쪽을 택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사르트르는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할버지 댁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된다. 외할아버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의 큰 아버지로서, 사르트르의 어머니 안마르는 슈바이처 박사와 사촌지간이다.

외할아버지는 사제이자 인문학자로서 집에 방대한 양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었고, 홀로 지낸 사르트르에게 서재는 유일한 놀이터이자 정서적 안식처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어릴 적 사르트르는 어머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여러 번 경청하면서 그 문장 하나하나를 다 외울 수 있었고, 같은 내용의 책을 실제로 접하면서 자연스레 글을 터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글을 깨우친 것이다.

“엑토르 말로의 [집없는 아이]를 들고 내 간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벌써 다 외우고 있는 책이었지만, 반은 암송을 하고 반은 글자를 뜯어보면서 한 장 한 장 끝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넘겼을 때 나는 글을 깨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53쪽)


글을 깨치면서 서재에 있는 수 많은 도서를 마치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불독마냥 하나씩 하나씩 정독과 다독을 거듭한다.

그런 일련의 생활은 사르트르를 자기만의 세상에 파묻히게 하였고, 지식의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


외할아버지는 손주인 사르트르를 끔찍이 아꼈고, 그의 아버지의 빈자리를 훌륭히 메워 주는 정신적 지주였다.

사르트르는 오히려 아버지의 공석이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 생애의 큰 사건이었다. 그것은 어머니를 사슬로 묶고 내게는 자유를 주었다. 세상에 훌륭한 아버지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일반 법칙이다. 남자들이 나쁜 탓이 아니라 부자간의 관계란 원래 고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뭐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이를 소유하겠다니 그런 당치 않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만일 나의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내 위에 벌렁 누워서 나를 짓누르고 말았으리라. 다행히도 그는 일찍 죽었다.”(22쪽)

통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인 관심으로 위장된 간섭, 복제된 인간형으로의 강요, 이런 것으로부터 그는 자연스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을 상기와 같이 표현하였다.


할아버지의 사랑 앞에서 사르트르는 순진하고 귀여운 천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한편으로는 서재에 틀어 박혀 온갖 종류의 서적을 탐닉하면서 자기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생활을 나름 향유하였다.

“이 무서운 아버지는 자식들을 짓누르면서 일생을 보냈다. 그런데 그들이 살그머니 들어와 보면 아버지가 어린애 앞에서 사족을 못 쓰고 있지 않은가? 세대의 싸움에서 흔히 어린애와 노인은 한패가 되는 법이다. 어린애가 신탁(神託)을 내리면 노인이 그것을 푼다. [자연은 말을 하고 경험은 통역을 하는 것이다].”(34쪽)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창조해 나간다. 나는 증여자인 동시에 증여물이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나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알았겠지만, 죽었으니 그런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남들의 사랑에 흠뻑 젖어 있으니까 권리가 없고 또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주니까 의무도 없다. 단 하나의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환심을 사는 것이다. 만사를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집안에는 선심이 낭비되고 있다. 할아버지는 나를 먹여 살리고 나는 할아버지에게 행복을 베푼다.”(36쪽)


사르트르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 최상의 과제였고, 그를 비롯한 타인의 시선 속에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본질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어릴 적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극중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고, 그 인물들과 함께 고뇌의 시간을 겪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할아버지가 보증해준 것으로 믿었던 그 재주가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는 싫었다. 나는 그것이 하나의 사명이라고 치부하기에 이르렀다......남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기를 바라는 그런 ‘타자로서의 나’가 되기 위하여 ‘자연’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나는 내 ‘운명’을 마주 보았고 똑바로 인식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자유’였다.”(184쪽)

흔히들, 우린 이 세상에 내던져진 우연적 존재이기에 자신을 주체적으로 창조해 나가는 대신, 남들의 눈을 통해서 마치 필연적인 존재인 것처럼 단단히 정립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아의 형성 과정 속에서 모두들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나는 유순한 어린아이라 죽을 때까지 복종하리라. 하지만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복종이다. 내가 막연한 대기 상태에 있다는 그 밍밍하고 역겨운 감정을 느낄 때에는, 내 운명이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세상 사람들을 모두 불러내서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덮어씌우고, 나는 그들의 집단적인 요구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나를 들뜨게 하는 자유와 내 존재를 정당화해 줄 필연성 어느 쪽도 완전히 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마음의 평화를 꾀하려고 했다.”(185쪽)


사르트르는 타자의 시선 속에 자리 잡은 ‘나’라는 본질과 주체적 창조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존재’속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이 같은 일련의 고뇌는 종교에 대한 심오한 고찰로 이어진다.

“신이 있다면 나를 이 궁지에서 끌어내 줄 수도 있었으리라. 나는 조물주가 보장한 걸작이었으리라. 우주적인 합주(合奏)에 나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신이 그의 의도와 나의 필요성을 계시해 주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으리라. 나는 종교를 예감하고 희망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었다. 설사 누가 나로 하여금 종교를 못 갖게 했더라도,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었을 것이다.”(107쪽)

“(교육과 정치를 분리한) 콩브 내각 이후로 칠팔 년이 지났는데도 공공연한 무신앙은 사납고 방종한 정념에 끌리는 짓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신론자라면 곧 괴물을 의미했다. 그는 터무니없는 짓을 할까 봐 아무도 식사에 초대하지 않는 미치광이였다. 또한 교회에서 무릎을 꿇고 딸을 결혼시키고 달콤한 눈물을 흘릴 권리를 스스로 거부하는 따위의 숱한 금기로 가득 찬 편집광이었다.”(108쪽)

“우리 주위에서, 우리 집안에서 신앙이란 달콤한 프랑스 식 자유를 장식하기 위한 명칭에 불과했다.”(109쪽)

“나는 가톨릭인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였고, 복종하는 정신과 비판하는 정신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111쪽)

“신은 내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얼마 동안 내 속에서 그럭저럭 연명하다가 죽어 버렸다.”(113쪽)

이 같은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입장은 그 존재의 이유를 찾아 또 다른 방황의 길을 떠나게 한다.

“나는 인간이란 불가능한 존재라고 활기차게 주장했다. 하기야 나 자신도 불가능한 존재였지만, 나는 오직 그 불가능성을 밝힌다는 사명으로 해서 남들과 다른 존재였고, 그래서 그 불가능성홀연히 변모하여 나의 가장 심오한 가능성이 되고 내 사명의 대상이자 내 영광의 도약대(跳躍臺)가 되었다.”(268쪽)

종교에 관한 사르트르의 관점은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개념과 상통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심지어 스스로의 구원을 위한 인간적 노력과 주체적 삶을 강조한 것은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순교, 구원, 불후의 명성 등 모든 것이 결단나고, 대궐은 무너져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나는 성령을 지하 굴에서 붙들어 몰아내 버렸다. 무신론은 가혹하고도 오랜 시일이 걸리는 작업이다.”(269쪽)


그리고 필멸의 존재인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시간을 역산하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 미래 세계로부터 현재를 바라본다. 이를 사르트르 스스로도 정신착란이라 칭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치유할 수 없는 고질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그가 진보적 좌파 사상을 흡입하여 러시아와 중국을 넘나들며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들과 유대를 갖게 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나는 궤도의 출발점에 있는 한 미립자이며, 또한 방파제에 부딪혀 역류하는 물결이었다. 나는 뭉치고 압축된 존재, 한 손으로는 무덤을 만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요람을 만지고 있는 그런 존재였다. 나는 어둠이 삼켜 버린 번갯불인 양 내 존재도 짤막하고 찬란하리라 생각했다.”(260쪽)


그는 일생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자평한다. 일련의 과정이란 글을 통한 교양, 의식, 종교와 이념을 포함하는 깊은 사고 등을 의미하는 듯하다.

“나는 장비도 연장도 없이,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만약 내가 그 불가능한 구원을 소품 창고에라도 치워 놓는다면 대체 무엇이 남겠는가? 그것은 한 진정한 인간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모든 사람들만큼의 가치가 있고, 어느 누구보다도 잘나지 않은 한 진정한 인간이다.”(272쪽)


이 책은 사르트르가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철학을 담아낸 글이다. 그리고 구절구절 별 거 아닌 듯이 툭툭 던지는 표현들은 실로 기막히게 문학적이자 주옥같은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의 실존주의 철학 이론이 어떻게 자리 잡아 왔는지 그 면모를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59세의 나이에 쓴 가장 완숙한 사르트르의 작품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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