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흔드는 세계 경제 어디로 가는가?
-트럼프가 흔드는 세계 경제 어디로 가는가?
책의 부제에 나타나듯이 트럼프에 의한 세계 경제의 혼동 상황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기자 출신답게 시사적인 내용을 자신의 주관적 생각과 분석을 가미하면서 논리적으로 서술해 나가는데 글의 진행이 막힘이 없고 술술 잘 읽혀지는 내용들이다.
1. 미국의 경제 침체 및 재정 적자
근원적인 문제를 미국의 제조업 붕괴로부터 찾고자 한다.
레이건과 클린턴 시절로 거슬러 올라 중국의 WTO 가입이 성사됨으로써 중국의 제조업 부흥과 함께 미국 제조업의 쇠퇴가 시작된다.
미국은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업 대신 금융과 첨단 기술(바이오, 의료, IT 등)에 주력하는 정책을 전개한다.
게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20년 팬데믹 위기 당시, 미국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돈을 찍어 낸 탓에 미국 정부는 엄청난 재정 적자를 안게 된다.
레이건 때 재정적자 규모가 2,200억 달러(320조 원)이었지만 클린턴 때 국가 재정을 흑자로 돌려놓았기 때문에 국가 부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8년 부시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대규모 경기 부양책으로 2009년 재정 적자 1조4천억 달러(2천조 원)을 돌파했고 오바마 대통령 임기 후반에는 재정 적자 규모를 4,400억 달러(630조 원)로 감소했는데, 트럼프 1기 때 법인세와 소득세 등을 대폭 깎아주는 감세를 단행해 재정 적자 폭이 다시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팬데믹 위기로 미국의 재정 적자는 역사상 처음으로 3조 1천억 달러(4천500조 원)를 돌파한다. 팬데믹 초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별다른 방역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사망자가 급증하자 뒤늦게 강력한 방역 초치를 취했기 때문인데, 당시 미국은 모든 음식점의 영업을 정지시키고 연방 정부의 돈으로 영업 손실을 보상하는 등 극단적인 봉쇄 조치를 취한 탓에 재정 지출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엄청나게 풀린 자금으로 호황기를 누리게 되어 재정 적자를 충분히 줄일 수가 있었으나 오히려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 부양을 시행하게 된다. 팬데믹 위기가 끝나는 2024년 재정 적자는 1조 8천억 달러(2천600조 원)을 기록하게 되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의 규모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미국의 국가 부채이다.
바이든 정부의 경기 부양책으로 말미암아 2024년말 국가 부채는 36조 달러(5경 1천조 원)에 달하는데 그 이자 지불에 들어가는 비용이 미국 국방비를 넘어서는 위험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즉 2024년 국방비가 8,400억 달러인 반면 이자 비용이 8,700억(1,240조 원)를 기록해 역사상 처음으로 이자 비용이 국방비를 넘어서게 되었다.
앞으로의 상황은 더 비관적이라서 이자를 갚기 위해 더 많은 국채를 더 높은 금리로 발행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2. 트럼프의 관세 정책
트럼프 2기를 맞아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선전포고와도 같은 관세 정책을 전개한다.
저자는 트럼프의 의도와 목적을 7가지로 나누어 분석한다.
첫째로, 트럼프 1기 때와 같이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제조업의 부활과 그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셋째는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다.
여기까지는 트럼프 집권 1기 때와 같다.
트럼트 2기에 들어 네 가지 목표가 더 생겼는데,
넷째는 관세를 부과해 추가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세관에 관세를 납부하는 것은 미국의 수입업자이기 때문에 관세 부담을 외국 기업에게 전가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이다. 미국 수입업자들의 관세 지급으로 국고 충당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수출업자들로부터 세금이 유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관세를 협상의 무기로 활용해 다른 나라를 겁박하여 미국 국채를 헐값에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무이자 장기 국채를 만들어 다른 나라에 강매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각국은 나름대로 여론이 있어 이 또한 난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섯째는 관세를 무기로 다른 나라의 통화 가치를 끌어 올리는 형상을 통해 달러 약세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민간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달러 보유 규모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각국의 중앙은행을 통해 통화 가치를 주무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 또한 헛된 목표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달러화 가치는 낮추면서 달러 패권을 강화하겠다는 모순된 목표를 꿈꾸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무제한 양적 완화로 달러가 워낙 많이 풀려 있는 상황에서 달러화 가치를 낮추고 동시에 달러 패권을 강화하는 서로 상반된 목표를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정치적 레토릭으로 좌충우돌하는 양상이다.
3.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오래전 읽었던 안토니오 네그리의 저서 [제국]에 따르면 앞으로의 제국은 물리적 지배라기보다 네트워크 화된 권력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군사력, 자본력(금융) 그리고 지배적 기술이다.
미중의 패권 전쟁에서 상기 3가지 요소를 염두에 두고 살펴봐야 할 것이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현재까지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기축통화로 자리 잡은 달러, 군사력, 첨단 기술에 힘입은 바 크다.
미국이 현재의 어마어마한 재정 적자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달러가 기축 통화라는 사실이다. 즉 시뇨리지(Seigniorage: 정부나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익을 의미)효과에 따른 것인데 이는 100달러 한 장 찍는데 드는 비용 18센트만으로 100달러에 해당하는 상품을 손쉽게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스스로 제조업을 포기하고 대신 전 세계 IT 플랫폼 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과 막강한 금융 산업, 그리고 지적 서비스 산업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막대한 이윤을 누려왔다. 1981년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경제의 부활을 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제조업 보다 금융과 기술 산업에 집중해왔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멕시코 등 해외로 생산 기지를 옮기기 시작한다. 미국의 제조업 몰락은 외국의 착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 스스로가 더 경쟁력 있는 산업을 선택한 결과인 것이다.
제조업의 몰락은 단순히 지표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제조업은 원자재와 부품 조달, 물류와 유통 등 다양한 산업과 연결되어 있어서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높은 바, 거의 40년 간 침체된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부활시킨다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오바마-트럼프-바이든으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제조업 부활을 위하여 리쇼어링 정책을 과감히 시도하고 있지만 제조업이란 것이 부품=>중간재=>제조 및 조립으로 이어지는 소위 Supply Chain이라는 일련의 유기적 연결이 필요한 산업인 까닭에, 리쇼어링을 독려하기 위한 막대한 재정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상태임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제조업의 몰락은 앞으로 계속 미국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 예로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투하되던 날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대규모 AI 관련 데이터센터 세 곳의 공사를 중단하거나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트럼프 관세에 따른 비용 상승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다. AI데이터 센터에는 엔비디아 칩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통신용 반도체나 네트워킹 장비. 냉각 시스템 등 각종 장비가 필요하다. 이 장비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고 한국, 중국, 베트남 등에서 수입하는데, 트럼프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자 공사비 폭등을 우려한 마이크로소프트가 공사를 연기한 것이다. 그 뒤 아마존과 메타도 이와 비슷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전면에 내세운 정책들이 중장기적 안목을 갖고 다시금 차근차근 준비를 한다면 미국은 지금보다 탄탄한 경제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나, 트럼프는 이제 3년 후 대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만 한다. 그러다보니 트럼프 정부는 오락가락 서로 상충되는 정책들을 난발하게 된다. 그럴수록 미국에 대한 세계의 신뢰도는 하락하고 이는 국채 발행에 있어 더 높은 이자율을 지급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트럼프의 갈지 자 행보는 결과적으로 중국을 도와주는 꼴이 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지식 자원의 유출을 막고자 중국 출신 연구원들의 미국 내 고용을 억제하였으나, 이들은 중국으로 돌아가 중국 산업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두 손 들고 환영하며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함으로써 중국의 시름을 덜어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고성능 반도체 칩의 수출을 통제하였으나 이를 기화로 중국은 자체적으로 대체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미국의 3대 패권, 즉 달러 패권, 군사력, 기술 패권의 시대가 쉽게 저물지는 않겠으나 중국의 최근 부상(浮上)이 더욱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제조업, 달리 말하면 덤핑을 통한 단가 전쟁으로 세계 제조업의 왕자로 군림하는 동안 세계 각국의 눈총을 받아 평판이 좋지 않았으나, 이번 트럼프의 관세 전쟁의 가장 큰 실책은 자신의 우호 세력들을 모조리 적으로 돌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역풍은 언젠가 태풍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 P/S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로마가 금 함유량이 현저히 부족한 화폐를 발행하여 액면가에 해당하는 가치로 시장에 유통시킴으로써 금 함유량이 제대로 된 양화는 장롱 속에 숨어들고 함유량이 부족한 화폐만이 시중에 돌아다니게 됨으로써 생겨난 말이다.
일종의 시뇨리지의 병폐를 일컫는 것인데 로마 제국 또한 본국의 재정 적자를 다른 지배 국가에 떠넘기려 함으로써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또 다른 예가 떠오르는데, 나는 현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마치 나폴레옹 대륙봉쇄령의 데칼코마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견제하고자 영국 상품이 유럽 전 대륙에 들어올 수 없도록 대륙봉쇄를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력 있는 영국 상품을 브라질 상선에 몰래 실어 밀수를 했던 러시아를 정벌하고자 전쟁에 나서지만, 러시아의 청야 전술에 대패를 면치 못하고 결국 몰락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란 나라가 강력한 국가이지만 전 세계 GDP의 25%에 불과한데, 미국 시장을 놓고 세계를 대상으로 한 바탕 전쟁과도 같은 싸움을 거는 것이 비록 중국 견제라는 숨은 의도가 있다할지라도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문제는 우리의 처신이다.
여우같은 등거리 외교를 요령껏 잘 해야 하는 것인데, 남북문제 해결도 시급하고 일본과의 갈등, 미국에 고자세로 나설 수도 없고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정부의 현명하고 슬기로운 대처로써 이를 헤쳐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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