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切創 구병모 作)

구병모 장편소설

by 이병철


절창(切創)


글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절창(切創)이란 칼이나 날카로운 것에 베인 상처를 뜻한다.

상대의 상처에 손을 대면 그 사람에 대한 내면의 생각과 정보가 절로 읽혀지는 그런 능력의 소지자가 등장한다.

이런 특이하고도 기이한 재능을 소유한 인물은 “아가씨”라 불린다.

작품 내내 그녀의 이름은 노출되지 않고 그녀의 내레이션에 의존하여 소설의 줄거리를 파악해야 하기에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


아가씨라 불리는 소녀의 특이한 능력을 알아채고 그녀가 고아원생 시절 때부터 알고 지내다 아가씨의 생활고를 빌미로 자신의 특별 보좌관 마냥 함께 동거 중인 문오언이라는 사업가.

문오언은 겉으로는 레스토랑을 운영하지만 실제 그의 주된 사업은 암흑세계의 불법적인 물건을 유통하는 것이다.

문오언의 비밀 저택에 반강제로 갇힌 채, 감금과 다름없는 동거를 이어가는 아가씨, 문오언은 그녀를 통하여 지하세계의 다른 조직원들을 잡아와서 비밀스럽고 중요한 정보들을 캐낸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들의 몸에 상처를 내고선 . . .

문오언은 아가씨의 능력을 통하여 비밀번호를 알아낸다거나 저장 창고 같은 은폐 장소를 알아내어 사업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문오언을 추적하는 한 남자가 아가씨의 기타 선생님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그 저택에 잠입하게 된다. 외출이 금지된 아가씨가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는 요청에 의해 . . .

내용상으로 보면 기타 선생이 경찰 혹은 형사같은데 직업이 특정되어 나오지는 않는다.

기타 강습을 명목으로 수차례 그 집을 드나들던 기타 선생은 개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고, 아주 우연히 아가씨와 인터넷 쇼츠를 통하여 접촉을 하게 된다.

아가씨는 자신의 생일날 동반자 없는 특별한 외출을 허락받게 되어 어느 한 카페에서 기타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마치 비밀 접선 같은 방법을 만나 그의 차에 올라 문오언으로 부터 탈출을 시도하지만, 생일 선물로 받아 차려입은 옷가지에 추적 장치가 감춰져 있었고 이로 인해 두 사람 모두 사로잡히게 된다. 체포 당시 기타 선생의 차 안에서 권총과 실탄이 발견되는데. . .

결국 그 남자는 어느 바닷가에서 익사한 것으로 드러나고 이에 아가씨는 문오언에 대한 증오가 극에 차오른다.

이로 인해 문오언이 자신의 몸에 칼로 깊은 상처를 내며 자신을 읽어달라는 호소를 수시로 해보지만 아가씨는 한사코 거부한다. 다른 사람을 읽어 줄지라도 절대 당신을 읽는 일은 없을 거라는 다짐을 한다.



이럴 즈음 독서 선생님이 등장한다.

소설의 첫 장면은 독서 선생이 저택에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적 흐름은 상기와 같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나는 것이지만, 독서 선생은 죽은 기타 선생의 아내로서 남편의 의문사를 해결하고자 사재를 털어 흥신소와 같은 업체와 계약하고, 감금 생활을 하는 아가씨가 독서 선생을 필요로 한다는 정보에 따라 신분을 위장하여 입주형 독서 선생으로 문오언의 집에 잠입하게 된다.

흥신소 직원들은 청소부로 위장하거나 수리공으로 변장하여 집안 내부를 관찰하게 되고 독서 선생과 간헐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치밀한 탐색 끝에 독서 선생은 서재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두터운 페이크 북이 꽂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자물쇠로 채워진 페이크 북에는 기타 선생이 소지하고 있었던 권총이 숨겨져 있었다.

아가씨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채, 문오언을 위협하여 그가 운전을 하도록 하고 아가씨는 조수석에, 자신은 뒷자리에 앉아 저택에서 빠져 나오고자 한다.

그리고 남편(기타 선생)의 옛 동료였던 고팀장이란 자에게 연락하여 근처 가까운 곳에서 만나기로 하여 질주하게 되는데, 문오언은 약속 장소에 다다르게 되자 갑자기 맞은 편으로 핸들을 꺾어 함께 탄 차량은 난간을 치고나가 추락하게 된다.

3사람은 모두 중상을 입게 되고 결국 문오언은 치료 도중 사망하기에 이른다.



아가씨는 회복 중에 병원을 탈출하였고 세월이 흘러 수소문 끝에 어느 외딴 섬에 있는 수녀원에서 허드렛 일을 하며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아가씨를 독서 선생이 찾아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작품은 전적으로 아가씨와 독서 선생의 내레이션에 따라 사건 전개를 파악해야 하고 종잡을 수 없는 반전으로 줄거리를 알아내기가 매우 힘든 책이다.

로맨스 소설도 아니고 미스테리 작품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이다.

상처를 통하여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다는 설정 자체가 무엇을 의미할까?

내용 중에는 오독(誤讀)이라는 표현이 수시로 나온다. 상처를 통하여 읽어낸 것이 오독이 된다는 것, 그것은 읽는 자의 개인적 감정이나 생각, 선입견이 뒤섞여 해석될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타인에 대하여 심각한 오해를 하거나 섣불리 넘겨짚어 회복 불가능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말투와 눈빛 만으로 과장된 해석을 하기도 하고 상대의 내면적 심리를 파악하고자 많은 고민을 한다.


보여지는 것과 읽혀지는 것.

이 대목에서 사르트르의 존재론을 소환하고자 한다.

나 자신의 존재와 보여지는 내 모습에 대한 대비가 연상된다.

즉자(卽自being- in-itself)와 대자(對自 being-for-itself), 본질과 실존.

인간은 절대 홀로 정의될 수 없기에 사르트르는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해주는 필수불가결한 중개자는 바로 타인이야"라고 했다.


내용 중에 문오언은 아가씨에게 자신의 상처를 통해 읽혀지기를 원하다. 아니 갈구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아가씨를 감금시켜 두고 소유에 가까운 마치 주인의 입장에 있지만 한사코 아가씨는 보스의 요구를 무참히 묵살한다.

어쩌면 그녀는 문오언의 내면을 읽는 순간 그와 동기화(同期化)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일까? 문오언이 그녀에게 느끼는 사적인 감정과 동기화 되거나 그렇게 되면 그가 암흑세계에서 저지르는 범죄 행위에 동조해야만 하는 상황을 예단하고 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하세계에 몸담고 있는 문오언이지만 그의 서재에는 2만 여권에 달하는 책자를 소지하고 있었고 세익스피어 전집을 읽은 듯싶을 정도로 세익스피어 작품 속 대사들을 수시로 인용하는 제법 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알고 싶다는 철학적 고뇌 속에 있었던 인물로 해석될 수 있다.


그의 이름 문오언. 오언(烏焉)이라는 이름은, 까마귀 오자에 어찌할 언, 모양새가 비슷해서 헷갈리는 것을 의미한다.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 착각하거나 잘못 전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언성마(烏焉成馬 오가 언이 되고 언이 마가 된다는 뜻)라는 말처럼 그의 이성과 학문적 소양에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직업과 잔인한 행위, 아가씨에 대한 복잡한 개인적 심경 등을 상징하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그애는 나한테....질문입니다.

나한테 주어진 지극한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P/S

1. 이 책은 이야기 전개 속도가 매우 빠르지만 난해한 한자어가 난무하여 독서의 속도가 그것을 따라갈 수 없는 작품이다. 마치 최남선의 기미독립선언서를 보는 것처럼 고답적인 용어와 문체가 가득하다. 그래서 제대로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며 완독해내기가 아주 어렵다.

작품 도중에 나오는 훌륭한 문장과 표현 몇 구절만으로 작품의 전체를 이해할 수 없는데, 마치 성경의 몇 구절을 인용하면서 기독교 정신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매우 힘들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애절함이 부족하고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긴박함이 떨어진다. 작품의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2. 장 폴 사르트르의 작품 [닫힌 방]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보여지는 것과 읽혀지는 것.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일갈했던 작품을 다시금 열어보게 한다.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죽을 때까지 고행의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랄까?




--------- 끝 --------


절창.jpg


작가의 이전글닫힌 방 (장 폴 사르트르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