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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번들 May 14. 2022

한 발짝만 밖으로 나와봐요.

Dear Life

  가을이 되면 모두가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높고 푸른 하늘, 황금빛 들판,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일, 울긋불긋 타오르는 가을 산을 보면서 우리는 감동과 감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가을의 끝자락이 되면 손끝이 미치지 않는 높은 곳에 살다가 땅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본다. 우리는 마음 밭에 하나둘씩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면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항상 자기를 초월한 세계 속에서 감동과 의미를 찾는 것 같다.


  취준생이었던 그녀는 종종 들리는 환청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없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은 기독교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통해 의미를 찾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설교를 포함해서 교인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들도 그녀에게 별로 위안이 되질 못했다. 인터넷이나 뉴스에 정신과 환자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더 깊은 동굴 속에 숨었다. 지금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을 수 있다는 믿음도 희망도 없다 보니 살아야 할 이유도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놓고 스스로 그 속에 갇혀 있었다. 약물치료든 인지치료든 모든 치료가 그녀에게 소용이 없었다. 그녀를 마음의 감옥에서 구출해 주고 싶어도 밖에서는 들어갈 수 없어 안타깝다. 안에서 문을 열어야 들어갈 수 있다. 어떻게 얼어붙은 마음의 빗장을 녹일 수 있을까. 어떻게 겹겹이 쌓인 상처로 인해 생긴 불신의 벽을 무너지게 할 수 있을까.      


  그녀에겐 꾸준한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무 편견 없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관심을 보이면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열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그녀는 자기 증상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한 발짝만 밖으로 나와서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생의 임무를 다하고 내려앉는 낙엽도 감상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녀는 현재 증상의 무력한 희생자가 아니다. 그녀에게는 자기 증상에 도전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있다. 그것은 자기를 넘어서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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