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들라이트: 사카모토 류이치 - 그의 삶과 음악을 기리며>를 다녀온 뒤
저는 어린 시절 극장에서 처음으로 접한 영화 <타이타닉> 이후로 언제나 영화라는 문화에 관심을 품고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비극이라는 거대한 참사 안에서 빛나는 두 남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 작품을 몇 번이나 다시 관람하더라도 헤어나기 힘든 강력한 매력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지닌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고도 아름답게 지탱해 주는 것이 바로 영화 전반에 울려 퍼지는 스코어 음악이었습니다. 제임스 호너가 작곡한 타이타닉의 스코어는 영화의 분위기와 아름답게 어울렸으며, 무엇보다 음악을 듣고만 있어도 소중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영화음악이라는 장르에 푹 빠져있던 저는 영화를 찾아볼 때 시놉시스나 배우, 감독뿐만 아니라 작품에 참여한 작곡가의 이름을 보고 영화를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대를 품은 뒤 극장 개봉 때 관람했던 영화가 바로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이었는데, 이 영화의 스코어를 담당한 작곡가는 세계적인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인 <사카모토 류이치>였습니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마지막 황제>로 전 세계에 자신의 뮤지션으로서의 개성을 보여줬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최근이었던 23년 3월에 타계하였습니다. 고통스러운 암 투병 생활을 지속하면서도, 작곡 활동을 비롯한 원전 반대를 위한 환경운동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전혀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면모를 저는 언제나 동경하고 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사망하기 직전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고, 일본에서 최근 개봉한 <괴물 (2023)>이라는 작품이 그의 영화음악 유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자신의 삶을 종결하기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이어나갔음을 느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사카모토 류이치가 내한 공연을 직접 티켓팅하여 참석하는 것이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의 타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눈길이 가는 연주회 소식을 sns를 통해 접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연주회 프로그램인 <캔들라이트>에서 사카모토 류이치를 헌정하는 피아노 연주회를 진행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캔들라이트는 일반적인 오케스트라 연주회와는 다르게, 수많은 캔들과 온기가 느껴지는 은은한 조명으로 구성된 무대에서 보다 가까이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연주회와 차별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캔들 한가운데 놓인 피아노를 통해 연주자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곡들을 이어서 연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오랜 팬이었던 저는 고민 없이 예매하였고, 일반적인 연주회와는 어떤 다른 감정을 건네줄지 궁금했었습니다.
연주회 당일인 6월 17일 토요일에, 광화문역 주변에 위치한 정동1928 아트센터에 도착하였습니다. 서울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이국적인 건물 양식에 영화 세트장에 온 것 같은 신기한 인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함께 모여있었습니다. 더불어 입구부터 놓여있는 자그마한 캔들의 불빛에 눈길이 갔던 기억이 납니다. 공연장인 아트센터 2층에 올라가자 캔들의 불빛과 난색으로 아름답게 채워진 조명 속에 놓여있는 피아노가 놓여 있었는데, 저를 포함하여 많은 관객분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신선해하면서도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연주회에서 사카모토의 곡을 연주한 정다현 피아니스트는 곡을 연주하기 전 관객에게 사카모토 류이치에 대한 소개와 함께 뉴에이지로서의 그의 곡들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해주셨고, 캔들라이트 공연장의 분위기 속에서 이는 참으로 아름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The Sheltering Sky>, <Merry christmas Mr. Lawrence>, <MUJI2020> 등 평소에도 자주 들었던 그의 음악을 직접 눈앞에서 바라보며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오케스트라 협연이 아닌 오직 피아노 독주였음에도, 10곡이 넘게 이어진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우리들을 매료시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다현 피아니스트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카모토의 곡으로 영화 <별이 된 소년>의 테마곡 <Shining Boy & Litttle Randy>을 꼽았는데, 저 역시 가장 아껴 듣는 곡이었기에 이 곡의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을 때는 더없이 각별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1시간 10분 가까이 진행된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관객들의 열정적인 갈채로 마무리된 이번 연주회에서 나서며 이제 그의 음악은 과거형으로 남게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연주회를 통해 문화가 지닌 보이지 않는 힘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음악이라는 이름의 유산이 결국에는 나날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는, 시간이 흘러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랑받게 될 ‘클래식’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아름다운 확신을 가지며.
23.06.17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