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코 - 안개의 성>을 접하며.
2012년 개봉된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는 실제 사회 문제를 미스터리와 절묘하게 접목하여 극을 이끌어나가는 강력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화차>의 원작은 일본의 사회파 추리 소설의 대가인 '미야베 미유키'가 쓴 소설입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화차를 비롯하여 실제 사회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소재로 여러 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런데 <화차>의 작가가 비디오 게임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소설을 쓴 경력이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의 독점작으로 발매된 게임 <이코>는 기존의 비디오 게임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플롯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어드벤처 장르를 띄고 있음에도 게임 속 캐릭터의 액션은 화려하거나 호쾌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설명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게임의 목적이라곤 뿔이 달린 소년이 신비한 분위기를 띄는 소녀와 함께 거대한 성 안에서 탈출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이코>는 요즈음 직접 플레이 해보고 싶은 작품이지만, 초등학생 시절 이 게임을 친구 집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때는 지금 같은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묘하게 공포스러운 적들의 이미지와, 폐쇄적인 성 내부의 분위기에 이상한 두려움을 느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이 불친절하다는 점에서도 꺼려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 이 게임에 대한 영상들을 다시 접했을 때는, 더없이 즐기고 싶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뿔이 달려있다는 이유로 제물이 되어야 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해야하는 한 소년이, 예견된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더불어 성 안에서 마주한 소녀와 함께 서로 손을 잡고, 도움을 주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두 인물의 여정은 무척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써낸 <이코 - 안개의 성>은 원작 게임에서는 설명되지 않았던 여러 설정과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게임 속 주인공 이코의 나이는 대략 초등학생 정도로만 추측이 가능하나, 소설에서는 13세로 정확히 묘사되는 등 게임에서 모호하게 다뤄진 부분들이 소설에서는 보다 선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코가 성에 끌려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임과는 다르게, 성에 도착하기 전 마을에서 생활했던 이야기도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원작인 게임을 접하지 않고 이 소설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미야베 미유키가 원작 게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입니다. 팬으로서 자신이 사랑한 작품에 세밀한 디테일을 채워 넣은 이 책은 원작 게임의 팬이 아니더라도 미야베 미유키 식 판타지 소설을 접할 수 있다는 기쁨을 만끽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