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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연필 Jan 21. 2024

29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는 기억들은 추억이 된다

영화 <러브레터>, <프리즘오브 29호: 러브레터>를 감상하고 나서

잡지 <프리즘오브 29호: 러브레터>에 삽입된 영화 <러브레터> 속 장면


작사가 김이나의 에세이 <보통의 언어들>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여러 단어를 인상적으로 재해석하여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기억’, ‘추억’ 두 단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추억이 인화되어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라면, 기억은 잘려져 나온 디지털 사진이다.’

‘모든 기억이 익어 추억이 되진 못하지만, 모든 추억은 결국 기억의 흔적이다.’


우리의 과거를 담은 사진들이 생각나 찾아보게 되면, 그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하며, 그때에는 놓치거나 몰랐던 것들을 사진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태의 차이가 있으나,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편지’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저는 사진 그리고 편지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기억과 추억이라는 단어가 함께 맞닿아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제가 기억과 추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때는 얼마 전에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5년도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죽은 연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한 여인 히로코와 그녀를 쏙 닮은, 그리고 우연히 죽은 연인과 동명이인이자 동창생이었던 이츠키라는 두 인물이 ‘편지’라는 매개체로 서로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천천히 전하고, 마침내 영화의 말미에 다다랐을 때에는 그들의 기억이 추억이었음을 살며시 전해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한 빠른 연락과 채팅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즈음의 우리 사회에서 젊은 세대에게 ‘편지’라는 단어는 유독 낯설게 다가올 것입니다. 일일이 손으로 종이에 내용을 적어야 하는 수고와 더불어 속도도 편지를 부치는 방식도 번거롭고, 내 편지가 도달하는 시간도 소요된다는 점에서 ‘편지’는 수명이 조금씩 깎이고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편지’는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에서 접하는 메일이나 채팅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편지를 직접 만지며 질감을 느낄 수 있고, 깔끔한 폰트로 정리된 메일이나 채팅과는 다르게, 편지를 쓴 사람의 흔적 혹은 상징처럼 보이는 각자의 글씨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쌓여가는 편지의 두께를 어느 순간 바라보고 있자면, 편지라는 것이 우리가 주고받은, 하나둘씩 늘어가는 기억의 조각임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 <러브레터>는 벌써 개봉한지 29년이 된 작품이지만, 저는 얼마 전인 24년도 1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감상한 영화였는데, 내가 이 영화를 보다 어린 시절에 봤더라면, 내 삶에 자그마한 변화가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보고 나서 계속 제 마음에 그림처럼 남아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며 때때로 다시금 보고 듣고 싶은 것들이, 즉 소중히 다가오는 무언가가 이 영화에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메디오스가 작곡한 이 영화의 수많은 곡들 중 대표적으로 화자되는 곡인 ‘A winter Story’를 영화를 처음 감상한 직후에 자주 들었지만, 후에 영화를 다시 돌려보며 이제는 두 명의 이츠키가 학교 자전거 보관소에서의 추억을 떠올릴 때 흘러나오는 ’He Loves You So’를 가장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 영화 속의 인물들과 이야기 그리고 풍경 속에 더불어 작품을 아름답게 채워주는 음악을 좋아하기에 이 작품이 계속 떠오르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느끼기 어려운, 소중히 다가왔던 감정을 이 영화를 통해 기억보관소처럼 다시금 꺼내어 오롯이 품을 수 있었기에 이뤄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으로 <러브레터>를 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언제나 존경하는 지인분을 통해 감사하게도 한 호에 한 편의 영화를 오롯이 심층적으로 기록한 영화잡지, <프리즘오브>의 29호: 러브레터 편 한정판을 선물받게 되었습니다. 문학평론가, 영화평론가, 영화전공 교수 등 영화 <러브레터>를 사랑한 수많은 인물들 각자가 꼼꼼히 기록한 기억과 해석이 세심하게 담긴 이 작품은 마치 제게 200페이지의 편지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프리즘오브 29호: 러브레터> 한 장 한 장을 읽어나가며, 여전히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분이 있음을 그리고 기억 속의 소중한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가 내게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래시!’


연인들이 꿈꾸는 너와 나를 동일시하는 불가능한 고백의 순간을 바라보며, 아름답고도 한 편으로는 그 마음이 뒤늦게 전해졌음을 알기에 안타까웠던 감정을 떠올리며.


더불어 언제나 영화 <러브레터>의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로 전해주시고, 좋은 기회로 소중한 선물 <프리즘오브>를 통해 이 영화를 위해 기록한 ‘러브레터’를 함께 공유해 주신 이지혜 평론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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