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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연필 Mar 30. 2024

그 아이들의 세계에는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믿기에.

영화 <괴물(2023)>을 다시 보고 난 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편영화 <괴물(2023)> 속 한 장면.

*이 글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편영화, <괴물 (2023)>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작년이었던 2023년은 제게 있어 극장에서 깊은 여운을 준 영화를 많이 만날 수 있었던 해였습니다. 그리고 2024년도에도, 작년에 접했던 작품들 중 여전히 vod를 구입하여 다시금 찾아보게 되는 영화들이 몇 편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한 일본영화 <괴물>이 그중 한 편입니다.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담당하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스코어가 담겨있는 이 영화에는 지금도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장면만 꼽으라 하면, 역시나 두 소년 ‘미나토’와 ‘요리‘가 거센 태풍이 지나가고, 전복된 폐전철과 이어진 하수구를 통해 마침내 지상의 풀숲으로 나와 자유롭게 뛰어가는 영화의 종반부 장면일 것입니다. 영화 내내 건조하고 차분한 색감이었던 카메라가 화사한 햇빛 아래 두 아이를 비추고,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한 음악 ‘Aqua’가 울려 퍼지며 두 아이가 미소와 함께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암전 되었을 때, 저는 문득 ‘희망’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3부 구성으로 진행되는 영화 <괴물>은 분명히 좋아하는 작품임에도 1부, 특히 2부를 보는 동안에는 참으로 감정이 힘겹게 다가오는 영화였습니다.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의 시점에서 혼란스러움을 계속 느끼게 되는 1부에 이어 미나토의 담임선생인 ‘호리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사건은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정말과 힘겨움의 감정으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영화가 어른들의 시선을 지나, ‘미나토’라는 소년의 시점으로 화자가 옮겨지는 3부 구성에 이르러서야 관객이 영화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미나토‘와 ’요리‘라는 두 소년의 관계가 조금씩 묘사됨에 따라 우리는 이 둘의 관계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미나토가 요리에 대해 느낀 감정이 단순히 절친이기에 느꼈던 것이 아닌,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었던 그 감정에 대해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상황이 참으로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미나토와 교장 선생님이 음악실에서 단둘이 나눴던 대화에서 미나토는 스스로의 고민에 대해 해답을 받게 됩니다.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 부르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부르는 거야.‘


미나토 스스로 집에 갇혀있는 요리를 구해내고, 함께 ‘빅 크런치’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다시금 우비를 뒤집어쓰고 폐전철로 함께 나아가는 그 순간의 과정은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그의 마음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앞서 2부의 마지막 순간, 아이들이 있을 폐전철이 전복되어 버리고, 사오리와 호리가 힘겹게 폐전철의 창문을 걷어냈을 때, 그곳에 있어야 할 두 아이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침내 3부의 말미에 이 아이들의 그 이후의 모습을 늦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새로 태어난 걸까?’

‘그런 일은 없는 것 같아. 원래 그대로야.’

’그래? 다행이네.‘


뒤집어진 전철과 이어진 하수구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두 소년의 대화는 무엇보다 제게 안도감과 함께 희망의 순간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두 아이가 견뎌내야 했던 무수히 많은 인내와 고통의 순간이 지나고, 마침내 따스한 햇빛이 두 사람을 위로하듯 감싸주는 것만 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두 아이의 미래에도 여전히 여러 고난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척박한 현실에서도 꿋꿋이 버텨준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럼에도 이 둘의 미래에는 여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세계가 아닐까 하는 밝은 생각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이 실제로 두 소년을 연기했던 두 배우에게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전했던 디렉팅인 ‘더 많이 기뻐하고, 여태 내지 않았던 큰소리를 내도 된다.’라는 말의 이유가 느껴지듯, 저는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에는 여전히 긍정적인 마음을 품을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곳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끔씩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를 들으며, 미나토와 요리라는 두 소년이 햇빛 아래에 풀숲에서 큰소리를 내며 뛰어가는 풍경을 떠올리는 제 마음이 앞으로도 여전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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