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우리를 아동학대 교사로 만드는가
오늘도 바쁘게 두 아이의 등교를 준비하고 학교로 달려갔다.
교실에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특별했다. 늘 반짝였다.
처음부터 특수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특수교사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교사가 되고 싶었고, 성적에 맞춰서 진학했을 뿐이다.
30이 훌쩍 넘은 나이에 임용시험에 늦깎이로 합격했다. 첫 발령 받은 곳의 아이들은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실제로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은 첫째 아이와 동갑이었다. 늦깎이 신규의 출근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늘 열정적이었다. 애정을 쏟는 만큼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집에 있는 나의 아이들보다 학교 아이들에게 더 애정을 쏟았다.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저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던 날이 좋던 평범한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보세요?"
"여기는 OO 경찰서 입니다. OOO 선생님 맞으시죠?"
순간,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단 몇마디의 대화로 교실에서의 평범한 하루는 나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서라는 곳은 뉴스에서나 보던 공간이었을 뿐, 내가 가해자로 전화를 받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휴대폰을 붙잡은 채 멍하니 있자니 온갖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뭘 잘못했지?', '어떤 수업이 문제였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차갑게 울리는 '아동 학대'라는 말만이 귓가에 맴돌았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숨이 막히는 좌절감 속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잘 풀리겠지’ 하는 희미한 긍정이 함께 밀려왔다. 나는 흔들렸지만, 동시에 당당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했고, 때로는 집에 있는 내 아이들보다 학교의 아이들을 더 깊이 품어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바보같게도, 무너지는 마음 한켠에서 나는 이 불행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곧 학교로 ‘수사 개시 통보서’가 도착했다. 비공개를 표방하던 그 문서는, 교무행정사와 관리자의 손을 거치며 순식간에 교내에 퍼져버렸다. 나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자부했는데, 통보서 한 장은 그 모든 진심을 부정해버리는 것만 같았다. 교사로서의 자존심은 무너지고, 나 자신이 아동학대를 저지른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듯한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어느 순간 교무실에 들어서는 것이 두려워 졌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나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었다. ‘아동학대 혐의자’라는 이름만이 나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거운 좌절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고통은 이제부터였고, 더 무거운 시간이 교사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