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 ‘아동학대 가해자’가 되기까지의 거리

by SpecialYOON

지금까지 그려온 이야기는 픽션이다.

그러나 그 안의 상황은 교사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 교실에 서 있는 당신, 그리고 나에게도.

교사라면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지운 채 지낼 수 있을까.


학생의 말 한마디가 신고가 되고, 그 신고가 곧바로 ‘조사 대상자’라는 이름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설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교사라는 이름 앞에 ‘아동학대 가해자’라는

단어가 붙는 장면을.


아이를 때리지 않았고, 학대할 의도도 없었으며, 교육을 위해 필요한 말을 했고,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개입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아동학대 신고는 교사의 의도에는 관심이 없다.

신고자가 그 사건을 어떻게 경험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말했는가 시작된다.


또한 아동학대 사건의 상당수는 신체적 폭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교실에서 오간 말 한마디, 수업 중 감정이 격해진 학생을 진정시키는 과정,
다른 학생의 안전을 위해 취한 순간적인 제지, 그리고 그 장면을 바라본 누군가의 해석이 신고로 이어진다.


이 때 교사는 더 이상 ‘교육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는 자신의 행동을 입증해야 하는 사람,
자신의 언어를 해명해야 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직업윤리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문제는, 아동학대 사건에서 교사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점이다. 때리지 않았다는 사실, 학대의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 그 개입이 폭력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교사는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존재하지 않았던 의도와 행위를 입증해야 하는 이 구조는 교사를 더욱 더 고립시킨다.



모든 것은 단 한통의 전화에서 시작된다.

“아동학대 관련해서 조사받으러 오셔야 합니다.”

이 짧은 문장은, 교사에게 있어 교실 밖의 세계로 끌려나오는 첫 신호가 된다.

그 순간부터 교사는 수많은 기관의 조사와 함께 질문을 받는 사람이 된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 방법을 선택했는지,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지.


질문은 빠르게 이어지고, 교사는 머릿속에서 장면을 되감으며 답을 찾는다. 그러나 교실에서의 판단은 늘 즉각적이었고, 그 판단을 언어로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수교사에게 이 과정은 더욱 가혹하다.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교육을 위해 신체적 촉구가 잦고,
문제행동 예방을 위한 언어적 제지 반복되며, 학생의 감정 표현이 격렬한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학생이 상황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건은 아이의 말이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해석으로 먼저 기록된다.

또한 교육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 행동들은,

그 장면만 떼어 놓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 무엇도 교사를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교사의 말보다 먼저 기록되는 것은 신고자의 진술이고, 교사의 설명은 언제나 그 다음이다.


이 글은 누군가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신고 당한 교사를 비난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교사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과 구조적 문제를 현실에 가깝게 보여주기 위해 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사들이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덜 다쳤을 이야기를 뒤늦게라도 전하고 싶어서 시작되었다.


이제부터는 이야기 대신 구조를 말하려 한다.

아동학대 신고는 어떤 경로로 접수되는지, 신고 이후 교사는 어떤 절차를 거치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교사가 흔히 실수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은 무엇인지.


이것은 특별한 교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교실에 서 있는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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