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이 앉아 글을 쓸라치면 눈에 거슬리는 설거지산과 걸음걸음 즈려 밟히는 허물어진 옷 무더기들이 시간을 낚아채가고는 했다. 간신히 청소를 마무리하고 자리에 앉으면 '나는 우주먼지 청소부인가' 가라앉은 마음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글은 무슨,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할 바에야 집안일이나 제대로 하자며 슬그머니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던 날들.
어디를 둘러봐도 깔끔한 구석이 없는 방이지만 나에겐 인스타그램에 올릴 멋진 리뷰용 사진이 필요했다. 그나마 세상과 연결되어 주부 말고 뭐라도 하고 있는 내 모습이었기에 포기하지 못한 일. 하면서 내가 즐겁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더욱 즐거워지는 일이었다.
식탁 위에 올라와있던 잘 마른빨래들을 한쪽으로 쓱 밀어놓고 쓰고 나서 정리하지 않은 색연필과 스티커들도 잠시 저리 가 있으라하고는 멀끔한 공간을 하나 만든다. 노트 안에 내 글씨는 이렇게나 다정하고 정갈할 수가 없다. 보고 있으면 그저 흐뭇하고 뿌듯한 또 하나의 나였다.
마음에 드는 빛, 각도, 완벽한 사진을 한 장 건지고는 울리는 핸드폰 알림을 본다.
"프레임 속은 언제나 보여주기가 목적이죠^^ 프레임 밖은 흠흠흠....... 아시잖아요?? 예쁜 책사진 찍는 고 부분만 깔끔하다는 것! 진실은 언제나 프레임 밖이라 생각합니다 ^^ 하하하하핫"
천리안이 있는 것인가! 마침 이렇게 고 부분만 깔끔한 사진을 찍고 있던 내가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야, 나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용기가 생긴 나는 프레임 안과 밖의 리얼한 모습을 찍어 보여주었다. 마침 하고 싶던 이야기를 누군가 먼저 꺼내주어 신이 난 마음으로 맞아 맞아 나도 그래를 외쳤던 것이다.
곰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진실되다는 건 뭘까? 감추는 것 없이 앞 뒤가 똑같다는 것일까? 가식도 허세도 없는 모습으로 대한다는 것일까? 내 앞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단지 진실되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원하는 건, 프레임 밖 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게 처음 보여준 프레임 안의 멋진 모습을 변함없이 보여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아닐까?
아무리 좋아하는 어떤 연예인 아이돌이라고 해도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까지 그가 화장실에 가고 때로 코를 후비는 모든 순간까지 보기를 원하는 건 병적인 모습일 테니, 내가 프레임 밖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생각에 늘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다만, 프레임 속 나의 모습이 조금 더 아름답기를, 내가 원하는 모습에 나날이 더 가까워져 가기를.
어쩌면 가장 진실되지 않은 건 내가 나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부지런히 내가 보여주고 싶은 진실된 모습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크롭 해서 버려내야 할 부분을 줄여가는 것.
우리 모두는 각자의 최선의 진실됨을 이미 마주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빨래도 안 개고 사진 찍고 놀았다고 뭐라 하지 말라는 변명을 이리도 구구절절 쓸 수 있는 나를 칭찬한다. 그러니 계속 쓸 것, 뭐라도 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