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런 머그잔에게 바침

나의 노란 머그잔에게

by 별빛 은주


새벽이 밝아오고
아침이 시작되면

녹빛 포트에서
팔팔팔팔
물이 끓어오르고

나는
내 하루의

작은 의식으로
바로 너를 선택하지

한 세계의

시작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야

몸을 기울여
포트를 기울여

또로로록
한 줄기
두 줄기

뜨거운 물이
내게서

너에게로
천천히 흘러내리면

고운 하루를

여는
네 몸에선

레몬빛 향이
폴폴 휘날리고

너는

비로소
생명의 빛깔을 띄고서
노랗게 꿈틀거려



그리고
우리의 가벼운 눈맞춤은
그제야 시작되지

안녕!
오늘

너와 나의 하루는
김서린 입김처럼
따뜻하구나

후후 불어
한 모금
한 모금

봄빛을 닮은
너의 따스한 온기가
내 온 몸에

퍼지면

너는 내게
다정하게

속삭이기 시작해

먼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참 좋아

후후 불어
한 모금
또 한 모금

휘이힝

창 밖엔
이 도시 한 귀퉁이를 할켜대는
매서운 바람소리가 사나워

후후 불어
한 모금
또 한 모금

아,
맞은편 어느집
때쟁이 아가는
드디어 쌔근쌔근

잠들었구나

나는 지금
레몬빛 너와 함께

내 작은 세계를

한 모금

한 모금씩
홀짝홀짝 마시고 있어

내 인생의
그윽한 내음을
깊이

들이마시고 있어

너와 함께
다가오는 하얀 계절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어

나의

사랑스런
노란 머그잔!

너와 수줍게
눈맞춤하는 그 순간엔

나도 모르게
무딘 심장이
콩닥콩닥 포근포근

아마 난

어쩔 수 없이


네 앞에서
볼빨간

사춘기 소녀인가 봐



[오늘의 음악]
Kiss Me – Sixpence None the Ri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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