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통으로도 산산조각 나는 일상
한국의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우리나라도 반이민 정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반이민은 그저 감정적 선동일 뿐,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외국인 범죄률이 유난히 높거나 더욱 잔혹하지도 않으며, 외국인들도 세금을 내 우리도 그 세금을 쓰며, 유학생들은 막대한 돈을 미국 정부와 학교에 내서 학교가 유학생 돈으로 운영된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외국인들이 없으면 그 많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직에 일할 사람이 당장 없어진다. 실제로 트럼프 당시에 반이민 정책한답시고 외국인 취업비자 거절률을 높였다가 많은 외국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농장에서는 수확이 중단되고 공장에서는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코로나까지 겹쳐 이런 문제가 결국 물가를 높이는 데까지 일조했다. 혐오의 비용을 미국인들이 낸 셈이다.
미국은 원래부터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며 이민자들의 기여 없이는 오늘날 미국의 부도 있을 수가 없다. 심지어 불법체류자 출신으로도 결국 아메리칸드림을 이뤄 미국 사회, 경제에 기여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넓은 땅에 이민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조치다. 이런 미국의 현실에 대한 이해없이, 땅은 좁은데 사람만 많은 한국의 반이민정서로 트럼프 편을 드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두는 것은, ‘그러게 누가 힘들게 미국가 공부하라고 협박이라도 했냐’는 반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많은 신학생들이 결국 미국 이민을 목표로 목회를 핑계삼아 유학을 계획하는 것과 달리(미국은 종교비자를 통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가면 안 돌아온다고, ‘미국은 목사와 선교사들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나는 처음부터 ‘한국에 반드시 돌아와 한국 사회에 기여한다’는 마음이 굳건했고, 미국 생활 내내 누가 물어보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한다, 할 일이 있다,고 대답해 미국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왜 이 좋은 미국 땅을 놔두고 굳이 후진국에…?’ 내게 최대 화두는 부패한 한국개신교회의 개혁이었기 때문에 미국살이가 좋든 어쩌든 나는 돌아갈 이유가 명백했다.
미국 반이민 정책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입경, 즉 비자와 입국심사를 엄격하게 강화하는 것과 국내의 불법체류자들을 단속해 추방하는 일이다. 트럼프 치하에서는 이 두 가지가 불필요할 정도로 강화되어, 정책의 원래 목적보다 억울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가장 커진 것은 ‘일상 속의 공포’였고, 그것이 지지자들이 원했던 바이기도 하다. 자신들과 경쟁하며 자기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게 영 꼴보기 싫었던 것이다.
주한미대사관에서는 오바마 정부 때, 이미 한국계 대사인 성김 대사 임명 이후로 비자심사가 과도하게 엄격하게 되어 있었다. 미국 신학교 입장에서는 많은 한인신학생들이 짭짤한 ‘캐시카우’(cash cow: 현금인출기 같다는 뜻)가 되어왔는데, 갑자기 입학생이 한 두명 밖에 안 오니 난리가 났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이제는 학생비자를 넘어 취업비자까지 심사가 한층 더 엄격해졌다.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22만원에 이르는 값비싼 인터뷰 비용을 내고도 거절은 더 많이 당하게 된 것이다. 오바마 때와 비교해서 열배가 넘게 거절률이 폭증한 비자도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비자를 발급받아도, 비행기 타고 미국 땅에 내려 입국 심사를 할 때 또 다시 긴장해야 했다. 강화된 심사관의 ‘마음대로할’ 권리 때문에 말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간 무고하게 쫓겨날 수 있었다. 실제로, 트럼프 치하 동안, 미국 공항 국내외선을 막론하고 심화입국심사장(Detention Center)에 많은 무슬림들이 아이를 안고 잡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중동사람은 모두 테러리스트인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저 혐오감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2020년, 한창 코로나가 미국에서 퍼져갈 때, 대다수 대학들이 비대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가을 신학기부터는 유학생이 모든 과목을 비대면 수업으로 들을 경우는 비자발급을 중단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정책을 추진했다가 대학 총장들에게 엄중한 항의를 받고 정책을 철회한 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드럽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온갖 치졸하고 유치한 정책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왔다가 폐기되곤 했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트럼프는 이민단속국 직원을 대폭 확충해서 불법체류자들을 잡아들이고 멕시코와 맞댄 국경 3천 킬로미터에 물리적 장벽을 세우겠다고, 이뤄질 수 없는 공약을 억지로 추진했다. 사실 불법체류자들로 이득보는 것은 미국인 사업주인데 말이다. 불체자는 아니어도 유능한 한인 박사생들은 ‘포스트 닥터(박사후) 과정’을 통해 아주 저임금으로 미국 대학 연구를 ‘돌리고’ 있었다. 그들이 다 빠져나가면 망하는 건 미국 대학이다. 여하튼 도대체 뭘 근거로 불법체류자를 단속할 것이냐는 말이다. 생김새로? 나중에는 혹시 이러다가 ‘비자서류 상시 휴대 및 불심검문’하겠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무슨 장발장인가. 일선 경찰들에게까지 불법체류자 단속권한을 주어서, 이제는 교통경찰만 봐도 괜히 움츠러들게 되었다. 뭐든 트집잡히면 강제추방되는 건 불체자든 아니든 상관없을 것이 미국 행정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기가막힌 것은 반이민정책이 무죄한 어린 아이들을 괴롭히는 데 사용된다는 점이었다. 부모가 데려와 졸지에 불체자 신분이 되어버린 이민자 자녀들에게 추방유예조치를 적용해주고 있었는데 그걸 없애서 부모에게서 떼놓더라도 본국으로 추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 정책이 적용되면 떠나야할 한인 아이들, 청소년들도 부지기수였다. 또 다른 정책은 국경을 넘다 걸린 부모에게서 아이를 떼내서 분리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저 괴롭히기 밖엔 안되는 정책이었다. 미국 공영방송인 NPR을 듣다보니 이렇게 분리수용된 아이들, 아기들을 관리한답시고 정체도 성분도 알 수 없는 잠재우는 약, 치료약 등을 부모 동의도 없이 마구 투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게 나치 강제수용소지, 소위 ‘세계인권경찰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루는 아내에게 처음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기는 이민단속국인데, 당신네 비자서류가 잘못되어서 지금 에반스톤 경찰이 잡으러 갈터이니 대기하라. 혹시나 싶으면 이 번호를 구글에서 찾아보라.’ 찾아보니 정말 에반스톤 경찰청이 나온다. 우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부들부들 떨면서 검색도 해보고 지인에게 전화도 해보고 난리가 아니었다. 정말 당장 강제추방 되는 걸까? 일단 학교 유학생처에서 이민단속국 대응을 교육받은대로,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아야지하며 문을 찰칵 잠그고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 구글을 검색하다보니, 이런 류의 전화사기가 유학생과 이민자들을 상대로 많이 이뤄지고 있단다. 경찰 전화번호를 어떻게 연결해서 겁을 주고 사기를 친다는 것이었다. 이런 걸 모르면 수백 수천 달러를 사기꾼들에게 뺏길 판이었다. 그들이 트럼프 지지자라면 얼마나 즐겁고 신이 날까? 우리는 혹시나 해서 한국 영사관 비상전화로 상황을 알리고 에반스톤 경찰에도 직접 전화했다. 경찰청은 요즘 이런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고 안심하라고 했다. 우린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하지만, 미국엔 이런 이들도 많았다. 동네 교회에서 이민자 자녀들을 위한 반트럼프 집회가 열린다고 해서 나도 한 번 가보았다. 거기에는 흑인들도 많았고, 미국 사회의 60%를 차지한다는 백인들도 그 정도 비율로 가족단위로 와서 강연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를 어린 아이들 손을 꼭 잡고. 그 진지하고 결연했던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많이들 데려와서 ‘보아라. 네 엄마아빠는 결코 혐오에 지지 않는단다. 불의에는 저항하는 것이란다’를 몸으로 교육하고 있었다. 진보적인 민주당을 지지해온 시카고는 반이민명령을 거부하는 ‘성소도시(Sanctuary City)’임을 선포했다. 진짜로 성소(예배당)가 있는 우리 신학교도 이민자들, 불체자들을 보호하는 성소임을 선포했다.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인 줄 모르겠으나, 시카고 오헤어 공항의 입국심사관들은 이럴 때일수록 더욱 친절하게 입국자들을 정중히 대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지면을 빌어 어두운 고난의 시기를 등대처럼 밝혀주었던, 그 모든 선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 고마워요. 참 인간성을 보여주어서. 나도 돌아가 그렇게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