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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Jul 19. 2024

담대한 사람이 영어도 잘한다

영어잘하기의 왕도는 사실 성품

많은 한국인들에게 영어란 꼭 한번 넘어야할 장벽 같은 것인가 보다. 그건 영어를 잘해서 출세하는 것을 많이 보아온 경험에서 비롯된다. 광복 이후 미군정이 들어서고, 여러 대통령 후보 중에 결국 미국에서 ‘박사’까지 마쳤다고 해서 ‘이 박사’로 불린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것이나, 미국선교사를 통해서 영어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들은 미군정 하에서 이득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에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사네 죽네 하는 문제에서도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그 단순한 이유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영어를 디즈니 만화 수백번 보기로 시작했다. 하지만 내 영어실력은 사실 국어실력의 반영이었다. 독서광으로 책을 많이 읽자 영어 지문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때 수능이 문법은 한 문제 나오는 수준이라 문법은 제쳐두었다. 유학준비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미뤄온 문법을 한 번 파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영어학원에서 문법 강의를 두 개, 개근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토플(TOFLE-유학자용 영어시험) 시험 준비는 흥미로웠다. 토플 단어와 GRE(대학원 입학시험) 단어장은 참 재미있게 외웠다. 문어체에 필수단어들이지만, 구어에서도 적잖이 쓰이는 단어들이었다. 듣기 공부는 ‘쉐도잉shadowing’이라는 방법으로 공부했다. 영어를 들으면서 바로바로 따라서 말하는 것이다. 못 알아듣겠으면 최대한 느리게 들어보고, 그렇게 들린다, 하는 것을 알아두었다. 호기심과 서양문화에 대한 관심, 언어에 대한 애정도 있었다. 사실 그게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러고 미국에 갔다. 이중언어를 해야하는 학생들은 레벨테스트를 해서 영어수업을 따로 들어야했다. 나를 테스트했던 미국인은 발음이 좋다고 말했다. 나중에 수업에서 만난 다른 한국 학생도 한국사람으로서 그런 발음 갖기 힘든데 잘한다고 해주었다. 나는 한국사람들이 잘 못하는 발음, B,V, F, R, L, Z을 신경써서, CNN앵커를 따라 입가를 쭉쭉 찢어가며 발음했다. 그런데 웃긴 것이, 발음 좋은 게 나중에는 발목 잡게 되었다. 발음’만’ 좋다보니 처음에 말 좀 섞어본 미국인들은 그 다음부터는 속사포로 각종 관용어구를 쏟아냈고 나는 그게 오히려 외국인에게는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영어를 잘하는 척을 할 게 아니라 못한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는구나, 그걸 깨달았다.


그리고 미국 가서 더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발음이 좋아도, 단어의 강세를 잘못 짚어 발음하면 못 알아듣더라는 것이다. 나는 단어를 새로 찾아볼 때마다 강세도 같이 외웠다. 그건 내가 듣기를 할 때도 중요한 힌트가 되었다. 개별 단어를 알아듣기 보다, 미국인들이 어차피 강세 부분만 힘줘 말하고 나머지는 흐리기 때문에, 강세부터 알아듣기로 했다. 단어가 아니라 ‘신호signal’라는 생각으로. 나도 나중엔 모든 단어를 명확하게 발음하기보다 강세 위주로 던지듯이 말하게 되었다. 문장의 억양까지 더 공부해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늘 듣기 말하기가 문제다. 나는 어떤 사람들처럼 독하게 영어사전을 다 씹어먹고 오로지 영어매체만 듣고 그렇게 강압적으로는 공부 못하는 체질이다. 공부한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보아둔다, 즐긴다는 느낌으로 주로 영어매체를 접했다. 이럴 때 이렇게 말하는 구나, 처음 듣는 표현은 입으로 꼭 되뇌었다. 역시 당장 자신이 급해서, 필요해서 하는 영어는 공부하기가 쉽다.  내 말하기의 가장 큰 문제는, ‘크게 발음하기’훈련을 안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집이 넓어 그런지(?) 크게 말한다. 크게 말하는 습관을 들였어야 했다.


영어 알아듣기는 본토로 갈수록, 사는 기간이 길수록 더 어려운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억양과 발음을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매체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단은 ‘다 알아듣기’를 포기해야 한다. 나도 영화관에 가서 한국영화를 봐도 한국어를 다 알아듣지 못하고 나온다. 헛욕심은 관두고, ‘한 단어만 낚아채자’는 마음으로 중요한 단어만 들은 뒤에, ‘그러니까, you mean, 내가 이러저러 해야한다는 거지?’ 해야할 거, 하지 말아야할 거, 언제까지, 그런 중요한 정보만 알아들으려고 하니, 그걸로 듣기는 일단 어느 정도 됐다. 문법 틀리는 거는 원래 본토인들도 하는 것이니 내 말하기에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주로 ‘언제 과거분사, 현재분사, 과거형, 현재형을 쓰는지’와 관사와 3인칭 단수에 신경쓰기까지 할 만할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외에 내가 신경쓴 것은 바로 비언어적 소통이었다.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잘 살펴보면서 내 습관도 고쳤다. 국수를 후루루루룩 쩝쩝 먹으면서 아무리 영어를 잘해봤자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그리고 소위 그 ‘스몰톡small talk’ 즉, 파티 같은데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능숙하게 이야기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돈, 종교, 정치, 호구조사, 인적사항, 개인건강은 입에 올리는 게 아니다. 주제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으면, 그 지역의 미식축구팀, 야구팀 이야기를 많이 알면 좋다. 아니면 내가 주제를 내는 것도 좋다. 그러려면 심연수의 ‘브릿지’라는 책에서 나오듯이, 내가 먼저 대학뉴스, 지역뉴스, 각종 혜택, 공연 소식 등을 챙겨두었다가 알려주는 것도 좋다.


박사과정생은 남들과 놀러다닐 일이 별로 없어서, 나도 미국 사람들과 아주 많이 소통한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혼자서라도 언어공부는 매일 해야된다. 그것도 시간을 따로 내서 해야 한다. 아무리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일할지라도 말이다. 한국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영어를 안쓰는데 이래서 영어가 안 는다. 차라리 다양한 나라 친구들과 혹은 배우자랑 영어말하기를 맞든 틀리든 많이 하는게 더 중요하다. 그게 더 빨리 는다. 나는 신기하게도 매일 내가 외웠던 단어들이 떠올랐고, 모르는 단어는 찾아보고 외웠다. 책을 읽다 좋은 표현이 나오면 기억해뒀다 쓰곤 했다. 매주 2~3백 페이지 하는 단행본을 한 권 이상씩 읽고 리뷰해야했기에 자연히 속독이 됐다. 영어매체를 들으면서도 공부했다. 나중에는 나는 꿈도 영어로 꾸게 되었다. 뭐 그리 억울한 일이 많은지, 내가 영어로 화나서 막 떠들때쯤 깨곤했다.


그리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볼 수 있었다. 돈 주고 못 알아들으면 얼마나 아까운가. 대략 60% 이상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CNN이나 NPR뉴스는 알아듣기 쉽게 발음해주니까 70%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일상생활에서는 노래가 좀 들리고, 공항이나 비행기 방송을 절반 이상 알아들었다. 관공서 가서 일 보는 게 겁이 나지 않게 되었다.


내 논문 계획을 발표할 때는 잘 아는 분야니까 술술 말했고 질의응답은 조금 어려웠지만 대부분 막힘없이 대답했다. 박사과정 종합시험을 볼 때는 대여섯개 분야마다 책을 적어도 열권씩은 읽어서 과목당 3시간씩, 아무 노트없이 가서 쓰고 왔다. 이렇게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건만, 원하고 바랬던 학위는 못따고 수료로 마치고 돌아와서 영어실력은 놀고만 있다. 하지만 한 언어를 안다는 것은, 그 사회와 문화를 깊이 깨닫고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일이어서 지금도 즐겁게 공부했던 시절의 추억은 따스하게 남아 있다.


사실, 영어를 잘하는 비결은 버터발음도, 문법도, 경험도 아니다. 우리 과 한인 중에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문법이고 뭐고 상관없이, 오로지 큰 목소리로 단어들을 그냥 막 던지기 식으로 말했다. 심지어 한 학기 내내 잘못 발음하는 단어도 있었다.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딱히 고치지도 않았다. 그에겐 내게 없는 게 있었다. 자신감, 큰 목소리, 뻔뻔함, 무엇보다도, 농담할 줄 아는 여유. 사실 미국은 인종의 천국, 이민자 천국이니, 누가 정식발음을 잘 하느냐가 아주 중요한 게 아니다. 크게만 말하면 대부분 알아서 듣는다. 더 중요한 건 ‘태도’다. 백인들과는 살갑게 잘 이야기하다가, 내 차례가 되면 눈 내리깔고 입 다무는 계산대 점원에게 ‘오늘 날씨 참 덥죠?’ 말 한마디 건넬 줄 아는 성품이 결국 미국사회에서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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