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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Jul 04. 2024

미국에서 문화통역사로 살기

미국 유학 8년, 한국과 미국을 깊게 경험하며 찾아온 변화

오늘도 김 대리는 회사 가기 전, 지하철역 근처의 스타벅스(이하 스벅)를 찾았다. 매끈한 광택의 유리문을 열면 훅 끼쳐오는 갓 볶은 향긋한 커피냄새. 활기찬 목소리로 진초록 앞치마를 입은 직원들이 바쁘게 커피 주인 이름을 불러댄다. “박수영 고객님, 주문하신 모카라떼 나왔습니다~” “별둘과 하늘 고객님, 주문하신 스페셜티 페퍼민트 초컬릿 프라푸치노 나왔습니다~” 


아침이지만 매장 안은 분위기 있게 약간 어둡고 묵직한 나무 색깔로 단장된 메뉴판과 주문대가 있다. 널찍하고 푹신한 가죽소파 옆 감각적인 그림 위에는 노오란 조명이 차분하게 비춘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부터 거기에 앉아 타닥타닥 맥북에 에어팟 프로를 끼고 일을 시작한 직장인부터, 노트에 열심히 영어강의를 필기하는 대학생도 보인다. 그들 옆에는 김이 풍성하게 올라오는 두텁고 묵직한 사기 스벅머그가 있다. 오래 앉아 있으려는지 커다란 벤티 사이즈를 시켜놨다. 아마 서너 시간은 족히 방해 없는, 순도높은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혹자는 한국의 ‘스벅 현상’을 두고, 한국 스벅은 단지 커피만을 파는 게 아니라, ‘미국 경험’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했다. 점심시간, 종로의 오래된 피맛골을 밀어내고 새로 지은 멋진 빌딩 로비 일이층을 차지한 스타벅스 리저브. 신입사원부터 중년의 과장, 임원까지 모두 줄을 서서 값비싼 리저브 커피를 시킨다. 한 잔에 팔구천원, 만원도 족히 넘는다. 매장 인테리어는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되고 풍요와 여유가 흘러넘친다. 음악도 그루브가 넘치는 재즈나 라운지 음악이 나온다. 차림새가 허술한 사람도 없다. 여자들은 마치 파리 패션위크 관람객들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젊은 남 직장인들은 최신 유행의 날렵한 수트에 무늬가 독특한 타이를 매고 진한 와인색 로퍼를 신었다. 내가 한국에 잠시 들어온 겨울, 한국 스벅 매장은 일하는 사람부터 손님까지 모두가 너무나 화려하고 멋졌다. 진초록 사이렌이 미소짓는 공간이 주는 멋진 안락함은 환한 형광등 조명에 의자가 다닥다닥 붙은 한국식 커피전문점과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성공,’ 한마디로 ‘성공’의 느낌이 충만하다.


나도 그런 ‘멋진 세계’의 이미지를 꿈꾸며 혼자 뉴욕 월스트리트의 스벅을 들렸었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상상했던 곳이 전혀 아니었다. 커피값은 한국보다 훨씬 쌌다. 매장 안은 닳을대로 닳은 허름함 그 자체였다. 화려한 스타벅스 리저브랑 비교하는 게 아니다. 한국 일반 매장의 매끈하고 세련된, 윤기나는 화려한 라운지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미국 커피계의 맥도날드 느낌이 더 강했다. 거기에는 '섹스앤더시티'의 캐리도, 홍보매니저인 사만다도 없었다. 그저 벙벙한 트렌치 코트를 입은 무신경해 보이는 백인 남자들, 증권맨들이 주로었다.


인터넷에서 미국에 대한 책을 검색해보면 몇 권의 에세이집들이 있다. 그 중 에세이집 몇 권을 읽어보았는데, 대부분 최대 3년 살이 이야기들이고 나처럼 유학생도 아니고 이민자도 아닌 상태로 장기체류한 사람의 이야기는 없었다. 브런치는 어떤가. '미국'으로만 검색해도 8백개의 이야기가 쏟아진다. 많은 이야기가 '미국은 이렇더라'는 이야기다. 


나는 거기에 또 뭐를 얹을 수 있을까. 


나는 학부때 한국사를 전공했다. 내 미국생활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한국과 한식, 한글의 우수함'을 지키려는 건 아니었다. 답답한 한국의 정치상황과 서울살이에 지쳤을 때쯤 떠나왔기 때문에 내가 속한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그렇다고 '역시 텐트도 미국께 좋아'라고 영화 '기생충'의 사모님처럼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태에서, 한국을 사랑하지만 비판적으로도 바라봤다. 그렇게 열린 문으로 미국문화를 배워가면서 더는 내 사고방식과 행동은 미국사람도 아니고 한국사람도 아닌 상태로 변해갔다. '세계다문화 소통'을 주제로 한 수업에서, 한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을 1) 혼돈에서 2) 편안하게 섞임, 3) 원문화로 돌아가서 새삼 차이를 느낌으로 정의했다. 내 상태는 딱 3번이었다. 이 수업에서 배운 것이 '문화통역사'(cultural translator)라는 개념이다. 문화통역사는 직업은 아니다. 두 문화를 익숙하게 익혀 양쪽에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문화통역사다. 


내가 경험한 미국이란 한국사람들이 보통 미국하면 떠올리는 동부의 뉴욕도, 서부의 엘에이도 아니었다. 너른 옥수수밭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한가운데인 중서부(Midwest)의 보석같은 도시인 시카고와 남북전쟁때 남부군의 수도였던, 동남부(South East)의 구릉과 숲에서 솟은 도시(the city in the forest)인 애틀랜타를 경험했다. 내가 경험한 두 도시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민의 영향을 덜받은 내륙도시라는 점이고, 흑백 차이가 매우 분명하게 양분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나는 그 고래등 사이에 낀 새우같은 아시아인이었다.


많은 미국 유학 이야기들은 화려한 '성공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내가 쓰려는 것은 유학은 실패했지만 조금 더 겸손한 사람으로, 그리고 문화통역사로 두 문화를 융합하는 사람으로 변해간 과정의 이야기다. 특히 트럼프 치하와 코로나 시대를 생생하게 겪은 이야기들이다. 고난중에 만난 천사같은 삶의 동지들과 동고동락한 것처럼 따스한 이야기들도 있다. 문화통역사로 두 문화의 경계를 디디고 사는 미국의 맛은 달콤씁쓰름했다. 



사진- 시카고리버, 본인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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